[인터뷰]'디지털 경영인' 포철 유상부회장

  • 입력 2000년 5월 23일 19시 54분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문을 닫으라”

포항제철 유상부(劉常夫·58)회장은 최근 시스템통합(SI)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포스데이타의 임원들을 불러놓고 이런 엄명을 내렸다.

90년 정보 고속도로(Data Highway)를 열며 정보화를 앞장섰던 포스데이타가 10년 뒤인 현재 크게 뒤처져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회장의 속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는 93년 정권교체와 함께 ‘TJ(박태준) 사단’으로 몰려 삼성그룹으로 물러났었다. 그 사이 포스데이타가 급격히 위축됐던 것. 따라서 ‘외풍’에 좌우되던 국내 기업환경과 자신도 힘을 쓸 수 없던 상황을 감안할 때 이 회사의 추락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

이런 상황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현재의 모습은 향후 10년의 비전과 독립적인 생존 전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 출신인 유회장은 재계 CEO 가운데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디지털 마인드’도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79년 포항제철 동경사무소 차장시절 한 전자상가에서 프린터가 달린 8비트짜리 컴퓨터를 숙소에 갖다놓은 이후 21년간 컴퓨터와 함께 생활을 해왔다.

“포트란 언어를 익히며 다른 사람이 짜놓은 프로그램으로 철강 생산 공정에서 사용하던 수치를 대입할 때만해도 컴퓨터는 단지 ‘계산이 빠른 기계’에 불과했다”는 것이 유회장의 회고.

유회장이 정보통신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꾼 것은 삼성중공업사장으로 재직하던 95년. 그는 “인터넷에 대해 굴뚝 산업의 생산비를 절감해주는 수단 정도로 알고 있다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강력한 산업 엔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요즘 그는 하루 일과의 절반을 전자결재와 정보검색에 쏟는다. 오전 8시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 컴퓨터를 켜고 e메일을 확인한 뒤 경제계 정보를 검색한다.

낮 12시 반 점심식사를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온 뒤에는 세계적 철강 상거래 회사인 E-Steel, Metal-site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산업 동향을 꼼꼼히 살핀다. 이런 시간에 회사 간부들이 서류 결재를 받으러 들어오면 전자 결재로 대체하라는 말을 듣기 일쑤.

지금은 “무거운 철강제품도 정보통신이라는 날개를 달면 전세계로 날아다닐 수 있다”고 표현할 정도. 그는 “핀란드의 한 철강회사가 전자상거래 유통망을 이용해 납기일을 35일에서 21일로 앞당긴 후 회사가치가 3% 이상 올라갔다”며 지난해부터 추진중인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을 독려하고 있다.

생산공정에서부터 판매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갖춰 2004년 포철의 가치는 현재의 2배인 30조원으로 올라겠다는 것이 그의 중기 경영 목표.

그는 디지털 경영의 효과를 투명성과 결부시켜 설명하기도 했다. “디지털은 어떤 형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모든 부문을 인터넷과 전자결재로 바꾸면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유회장은 22일 인터뷰 도중 “해외 출장중에도 전자 결재를 계속해야하는 부담도 추가로 생겼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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