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교 발전기금은 강제성 촌지인가?

  • 입력 2000년 5월 7일 19시 24분


▼학습기자재가 낡아서…▼

학부모 홍모씨(43)는 최근 학교에서 두번씩이나 보내온 가정통신문을 보고 큰 부담과 함께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학교운영위원회 명의로 된 이 통신문은 “학교 시설과 학습기자재가 낡아 이를 교체하려면 5000여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니 학부모님들이 학교발전기금을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홍씨는 얼마전 이사하느라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웠지만 발전기금을 안내면 혹시 아이가 교사에게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어 다른 학부모들이 어떻게 하는지 수소문 중이다.

“말로는 학부모 자율이라고 하지만 아이에게 돈을 보내거나 은행을 통해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냈고 안냈는지 금방 드러나는 것 아니냐”며 “반강제적 모금이나 다름없다”고 홍씨는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학교 현장에 도입된 학교발전기금이 일부 서민층 학부모들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학교발전기금은 IMF체제로 교육예산이 크게 줄어든 98년 9월부터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설치된 공립학교에서 교육환경 개선과 교육활동 내실화를 위한 명목으로 학부모들로부터 모금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사립학교 학운위 설치가 의무화된 올해부터는 사립학교에서도 발전기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됐다.

▼서울 작년 248억 거둬▼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99년 한해 동안 서울시내 초중고교에서 모금된 학교발전기금은 초등 154억9000여만원, 중등 87억4000여만원, 특수학교 5억여원 등 모두 248억원 가량. 지난해 시교육청에서 각급 학교에 지원한 예산 3941억원의 6.3%에 해당하는 액수다.

각급 학교는 학운위 결의에 따라 기금을 조성해 컴퓨터 등 학습기자재를 구입하거나 학예활동을 지원하는 등의 일에 사용하고 있다.

▼일부학교 할당액 지정▼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운동장 스프링클러 설치 등 교육적으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항목에 대해서도 기금을 모금하는가 하면 학급별로 할당 액수를 정해 교사와 학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로부터 자율적으로 기금을 모금해 학교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와는 달리 ‘반장 학부모는 얼마’ 식의 새로운 형태의 촌지로 비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서울 광진구에 사는 한 고교생 학부모는 “학교발전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학교에서는 웬만한 사업은 모두 학부모 모금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얼마전 학급 회장 학부모가 ‘반별로 정해진 액수가 있으니 이를 채워야 한다’며 전화를 걸어와 몹시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발전기금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어려운 학교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기금을 모금할 때 절대로 학생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도록 각급 학교에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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