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선의 뮤직@메일]시대정신 담긴 노래

  • 입력 2000년 5월 3일 10시 28분


우리 가요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슬픔과 허무주의의 극치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은 상황, 죽음을 찬미하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당시의 젊음을 선홍색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 텃자리가 식민지 상황이어서인지, 가요 속에는 눈물과 슬픔의 미학이 서려 있다.

‘사의 찬미’를 새벽종 울리고 마을길도 넓히자고 외치는 시대에 불렀다면 윤심덕이 사상범으로 몰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1975년 6월 유신체제 시작부터 1987년 6·29 바람을 타고 금지곡이 일부 해금되기까지 가요 2139곡, 팝송 1510곡이 묶여 있었다. 시대를 읊은 곡들을 묶어 두고, 정부는 건전가요라는 것을 만들어 보급하려 했다. 노래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꿰뚫은, 힘있는 책략가가 정부 내에 있었던 모양이다.

암울한 정치적 상황 속에 금지된 곡들 중에는 음악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빛나는 명곡들이 많았다. 그 중 특별히 시대정신의 승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두 음유시인이 한대수와 김민기다.

‘물 좀 주소’라고 외치며 ‘행복의 나라로’가자는 통기타 문화의 선구자 한대수, 수배자 명단에 오르내리며 ‘아침 이슬’같은 노래로 시대를 그린 미술학도 김민기의 젊음이 정신의 승리로 고스란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모든 예술이 시대가 어려우면 은유를 낳고, 사는 것이 편안하면 직유가 우세한다. 요즘은 이정현의 ‘바꿔’처럼 직설이 유행하고 각광받는다. 우선 시원하기 때문이다. 직설은 행동의 노래이지 사유의 노래가 아니다. 소비되는 음악적 이미지들 속에 시대정신이 스며들어, 미소짓게 만드는 노래가 더러 나왔으면 좋겠다.

박해선(KBS2 PD·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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