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정부, 현대그룹 유동성지원 고민

  • 입력 2000년 4월 27일 19시 33분


현대투신증권의 유동성 지원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자본시장 안정을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현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해소해주고 싶지만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이 금감위원장 시절 현대에 대한 일체의 자금지원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현 이용근 위원장이 ‘덤터기를 썼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5일 한국투신 대한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이 발표된 뒤 금감위에는 “왜 현대투신은 제외했느냐”는 항의성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현대가 과거 국민투신의 부실을 떠안았던 만큼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금감위는 98년 국민투신 인수 당시 현대가 6000억원 정도의 부실을 떠안은 점을 감안, 증권금융채를 발행해 조달한 2조원을 6%대의 저리로 빌려줬다.

당시 시장이자율이 13%대였기 때문에 7%포인트의 마진이 생기고 이를 4, 5년 굴리면 6000억원의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계산은 저금리기조가 정착되면서 보기좋게 빗나갔고 결과적으로 현대가 이후 지속적으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빌미가 됐다.

당시 이용근부위원장은 이같은 요청에 긍정적이었던 반면 이헌재위원장은 재벌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이 가져올 부정적 여론을 의식, 일절 불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6일 이용근위원장이 증금채를 통한 현대투신 지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결국 2년전의 ‘뜨거운 감자’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셈이다.

26일 현대 계열사 주가의 동반폭락이 현실화되면서 금감위는 사실상 비상사태에 돌입한 상태. 정부는 그러나 ‘부산한’ 대책이 현대에 대한 불신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이 ‘현대 재무구조 이상 없다’고 발표한 것은 금감위의 권유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감위 관계자들은 27일에도 “자금난으로 무너진 대우와는 사정이 한참 다르다”고 강조했다.

현재 증금채를 통해 당장 가용한 재원은 7800억원. 정부는 자칫 현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현대발 재앙’으로 확대될 경우에 대비, 무기명 채권발행 등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일단 현대에 대한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투신증권의 대주주인 현대계열사의 고통 분담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복안에 따른 것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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