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112비상벨 오작동 심하다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9분


무인점포와 은행 등에 설치된 112 비상벨 때문에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찰청 집계에 의하면 비상벨 신고를 받고 부랴부랴 현장에 출동하면 10건 중 9건 이상이 잘못 울려 헛걸음하기 일쑤다.

일선 경찰관들은 “순찰차와 경찰관의 시간 낭비는 물론 정작 필요한 곳에 경찰력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4일 오전 5시28분경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파출소에 112 비상벨로 ‘무단 침입자’ 신호가 떨어졌다. 신림사거리에 있는 한 금융기관의 24시간 무인점포에 설치된 사설 경비업체의 무인 방범시스템이 작동한 것. 이 시스템은 경비업체 상황실에서 이상 발생을 체크해 곧장 해당 파출소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3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 2명은 아무런 침입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조사결과 배달원이 신문을 출입문 아래 공간을 통해 점포 안으로 밀어넣는 순간 시스템이 작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찰관 2명이 30여분 동안 헛수고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1일부터 20일까지 서울지역 31개 경찰서에 접수된 112 비상벨 출동은 모두 1363건. 이 가운데 침입 흔적이 있는 곳은 118건뿐이고 91.3%인 1245건이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일선 경찰들이 “112 비상벨 신고가 접수되면 ‘잘못 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출동한다”고 말할 정도다.

건당 30분씩 잡아도 8시간 근무하는 파출소직원 156명이 오작동에 대처하느라 하루를 꼬박 보낸 셈이다.

신호감지기가 너무 예민해 작은 진동에도 작동하거나 사용자의 부주의로 잘못 눌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 금융기관의 경우 책상 아래 설치된 비상벨을 무릎으로 잘못 누르거나 작동 요령이 미숙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또 청소부가 아침 청소 중에 경보기를 잘못 건드리는 경우나 은행에 많이 설치된 열 감지기가 고양이 쥐 등을 사람으로 오인해 작동하거나 냉난방시 온도변화에 의해 작동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밖에 취객이 감지기가 설치된 물건을 발로 차거나 기댔을 때 오작동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때론 건물의 다른 층에서 공사를 할 경우에도 그 진동으로 오작동한다는 게 일선경찰관들의 말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산하의 한 파출소 직원은 “기기 자체의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한 오작동에 대해서는 사설경비업체측이 신뢰도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해 그 원인을 함구한다”고 말했다.

책임자 부담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은 2000여개의 카운티(군)에서 오경보에 대한 과태료나 벌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 예로 비상벨 출동의 98%가 오작동인 시카고의 경우 94년 시의회가 ‘비상벨 오작동’에 관한 조례를 제정, 주거지나 학교 교회 등이 아닌 기업체에 설치된 비상벨이 1년에 5번을 초과해 작동될 경우 울릴 때마다 50∼100달러(약 5만5000∼11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또 비상벨을 설치하는 모든 기업체가 허가를 받도록 했다. 잘못 비상벨을 울린 기업체는 청문회에 출석하는 일도 있어 기업체들이 사용부주의 등에 의한 오작동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일반적 상황이다. 메릴랜드주에서는 한달에 3회 이상 오출동시 30달러(약 3만6000원)를 과태료로 납부해야 하는 등 지역마다 기준은 약간씩 다르다.

일본에서도 일단 무인방범 시스템이 작동하면 단계를 구분, 경비업체에서 우선 현장확인 후 경찰에 연락하는 확인통보 방식과 작동 즉시 경찰에 연결되는 즉시통보 방식 등 2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우리나라 무인방범 시스템은 은행 등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되는 등 확대일로에 있다. 사설 경비원을 갖춘 대형 경비업체뿐만 아니라 무인 방범시스템만 설치해주는 영세 경비업체까지 포함하면 전국에서 100여개 업체가 성업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경찰력 낭비’는 시스템과 제도의 개선이 없는 한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오작동이 많은 곳은 제재나 벌금 등을 통해 특별관리하고 사설 경비용역업체들이 경비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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