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통일의 큰 산아래 지역주의 골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08분


남북합의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남과 북은 역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김대중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민족은 영원한 삶의 틀▼

총선을 3일 앞둔 10일 남북한에서 동시 발표된 ‘남북합의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다. 모든 것은 ‘민족을 위하여’다. ‘민족의 화해와 교류와 통일을 위하여’다. 조국통일 3대원칙 중 하나도 ‘민족대단결’이다. 규모의 경제, 전쟁위험 감소, 국방비와 인력 낭비 억제, 자주적 민주주의의 발전 등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그 어떤 근거와 논리도 ‘민족’이라는 한 단어는 앞에서는 군소리가 되고 만다.

고리타분하게 ‘민족’이 웬 말이냐던 ‘세계화론자’들도 남북정상회담 발표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자신도 괜히 들뜨는 것을 보며 ‘민족’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낀다. 장준하선생이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보고는 남북한 정부의 불순한 의도를 파악할 여유도 없이 “민족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며 감격해 했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지구촌시대에 배타적 민족주의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겠지만, 아무리 세계화시대 인터넷시대라 해도 민족의 기본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세계화의 논리 이면에는 이미 강대국들의 자국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가상공간이 점점 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간다 해도 ‘육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공간 언어 문화 경제 등으로 얽힌 민족공동체는 여전히 삶의 터전이다. 에릭 홉스봄이 지적하듯이 세계의 모든 시민이 동일한 자원과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은 한 재화와 용역을 똑같이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놀드 토인비나 E H 카는 근대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보며 민족주의의 확산을 우려했지만, 조선후기에 중국중심적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해 세계시민으로 편입되며 형성됐던 우리의 민족주의는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 민족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족자결주의’와 ‘인민주권’이라는 장 자크 루소의 민족주의사상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생존’을 위해 ‘민족공동체’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의문 발표 사흘 뒤 우리는 총선 결과를 보며 민족주의 아닌 ‘지역감정’ 앞에 무릎을 꿇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구한말 나라가 쓰러져 갈 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유교적 가족주의가 바로 나라 멸망의 주요 원인임을 깨달았었다.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이 유교의 전통에서 계승해야 할 것으로 가족주의를 꼽으며 끈끈한 가족적 유대감으로 서구에 함께 맞서자고 했던 것과 달리, 19세기 세도정치의 극심한 폐해를 겪은 우리는 사(私)적인 가족주의부터 버려야 공(公)적 영역으로서의 근대 민족국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소아적 가족주의 극복해야▼

그로부터 어언 100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과 분단의 아픔을 겪고 다시 민족통일을 꿈꾸면서도 우리는 아직 그 가족주의의 틀에 갖혀 있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이 사회의 가족주의 중 한 단면일 뿐이다. 이 사회 곳곳에 도사린 가족주의는 ‘민족통일’마저 이들 ‘가족’의 정략적 희생물로 이용해 왔다. 다시 민족통일의 희망에 부푼 지금, 100년 전 우리 선배들이 이루지 못했던 가족주의 극복의 과제는 민족 통합으로 가기 위한 첫 관문이다.

<철학박사 김형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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