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난코스 피해가기?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우스갯소리 하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머리 좋은 수재들이 나라 망치는 이유를 아는가? 바로 쉬운 문제부터 푸는 데만 이력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어려운 문제는 뒤로 제쳐놓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요령을 몸에 익힌다. 그런 ‘시험도사’ 요령꾼들이 명문대를 거쳐 고시에 합격하고 공무를 맡으니 결과는 보나마나다. 정작 풀지 않으면 안될 난제는 쌓이게 되고 종국에는 손도 쓸 수 없어 곪아터진다는 얘기다.

▷누구의 창작인지는 몰라도 뼈있는 농담이다. 실제로 공직자들이 골치아픈 난제라는 이유로 시간을 끌고 결재에서 빼버려 속앓는 민원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만사 시험답안지 한장처럼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이해관계, 본질적인 이해충돌이 쉽사리 풀릴 리 없다. 한보나 기아사태 같은 난제를 미적거리다 결국 국가신용을 잃고 부끄럽게도 IMF구제금융 신세를 진 나라가 한국이다. 물론 그 이전 단계의 구조조정 재벌개혁 같은 난제들을 외면한 탓도 겹친 것이다.

▷‘난코스’를 싫어하는 것이 어찌 공직자뿐이랴. 하지만 공직자들의 그런 안일한 의식 때문에 난코스를 조성하고 떼를 쓰면서 득을 보자는 측도 생긴다. 특히 ‘정치대목’이라고 할 선거철은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표의 눈치를 보는 시기다. 의사들의 집단휴진이나 시내버스 파업위협이 바로 그런 타이밍의 소산 아닐까. 공무원들은 ‘하필 선거철에!’라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정치권과 공직자들이 회피하고 떠넘기며 시간을 벌다 보니 이 소란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뿌린 대로 거두는 셈이다.

▷100여년전 영국에서 네차례나 정권을 잡았던 글래드스턴은 지금도 ‘인민의 윌리엄’으로 칭송된다. 그는 “곤란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난제에 대해 단편적인 땜질로 대처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폴리티션(정객)을 넘어서는 스테이츠맨(정치가)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역대 정권이 해결하지 않고떠넘겨버린 난제들이 적지 않다. 의약분업 한-약분쟁 의보통합 그리고 그린벨트문제 등등. 난제를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슬그머니 사라져 줄 것인가.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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