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완배/인종차별 비난 자격 있나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4분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논쟁을 ‘먼 나라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단일민족 사회라는 인식이 철저하게 못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 우리보다 못사는 국민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은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 행려병자로 오인돼 6년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네팔인 찬드라 쿠마리 구릉(44)의 경우를 보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에 할말을 잃게 된다.

찬드라가 입국했던 92년 당시 대부분의 네팔인들은 6개월 단위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었다. 소위 3D업종을 이들이 싼 임금으로 도맡았기 때문에 정부도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했던 것이다.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놓고도 우리는 이 ‘작고 못생긴’ 동남아인들을 철저하게 박대했다. 물론 고마워 하지도 않았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라인강의 기적’이 이어지던 60년대초 독일은 모자라는 일손을 메우기 위해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가장 많은 인력을 보낸 나라는 터키였고 우리도 간호사와 광원을 파견했다. 독일은 이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처음엔 ‘우리를 도우러 온 산업역군’이라며 반겼지만 세월이 흐르며 “외국인들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진다”며 홀대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간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차별받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박애정신까진 아니더라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접을 해주지 않고선 글로벌 시대엔 세계적으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 나라를 여행하는 한국인의 신변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무슨 낯으로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권리를 주장할 것인가.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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