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대식/'게놈'연구 집중투자 시급

  • 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으로 기능하게 하는 정보는 세포핵에 있는 DNA에 G, A, T, C 등 네 종류의 염기배열의 형태로 수록돼 있고 그 수는 30억개에 이른다. 이를 사람의 게놈(유전체)이라 하는데 이 정보가 한벌 복사돼 수정란에 넘겨지면 이를 이용해 필요한 양만큼의 단백질들을 순서대로 만들어 이들에게 할당된 일을 시키게 된다. 이로써 태아가 형성돼 사람으로 태어나고(生), 성장하고 늙어가며(老), 수명이 다하면 죽음(死)에 이르고, 이 정보에 이상이 생기면 질병(病)이 생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10년여 작업 끝에 3년 앞당겨 완성돼 유전정보의 염기배열 순서가 모두 밝혀진 것은 자신을 탐구하는 유일한 생물인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기능에 대한 연구가 맹렬히 전개될 것이며 의학의 발전과 생명공학 산업에 미칠 영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람의 30억개의 염기 안에 약 10만개의 유전자가 담겨 있다. 이 중 약 9만개의 유전자 기능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으로 여러 유전자의 기능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의 기능과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기능유전체학이 엄청난 속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해당 유전자의 생물학적 기능이 밝혀지면서 수정란으로부터 아기가 어떻게 발생되는지, 기억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사람은 어떻게 늙어 가는지,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질병 치료 신기원 열듯▼

정상범위를 벗어난 유전자의 작용으로 생기는 유전병 암 치매 고혈압 당뇨병 정신질환 등이 어떻게 발생되는지를 밝혀 이를 초기에 찾아내 예방하거나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노화를 담당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해 불로초를 개발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개개인의 차이를 나타내게 하는 단염기다형성(SNP)이 규명되면서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감안한 맞춤의료도 가능해질 것이다.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전망인데 특히 특정 질병을 유발하거나 질병에 걸리기 쉬운 소인을 나타내는 유전자 이상을 가진 사람의 유전정보를 보호하고 유전정보를 취득 열람 유포하는 범위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게놈프로젝트의 완결을 바라보면서 미국이 강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현대는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의 시대다. 비전을 갖고 앞날을 내다보며 새로운 개념과 강한 기술을 창출하는 개인과 조직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80년대에 벌써 미국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은 게놈 프로젝트의 인류사적 의미와 이것이 가져올 엄청난 부가가치를 예견하고 의회와 여론을 설득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10년의 시간과 30억달러의 경비, 여러 나라에서 수천명의 과학자가 동원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돼 예정을 두 번이나 앞당겨 완성됐다.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과 기술에 의한 부가가치의 창출, 효율적인 시스템과 관리 능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엄청난 부가가치 창출▼

결과물을 생명공학 회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개한 것은 세계의 과학자들에 개방된 경기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게놈의 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가속하겠다는 지적 개방권의 정신이다. 이면에는 자신들의 선도적 위치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 사업에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이미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고효율 게놈 기능분석 기술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제약회사들은 이 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할 난치성 질환의 진단 및 치료제 개발에 시동을 건 지 오래다. 농축산물과 환경 및 에너지 관련 미생물의 게놈사업과 응용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며 여기서 창출된 높은 부가가치로 미국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만 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산학연이 명확한 비전과 전략으로 역할을 분담해 탄탄한 연구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게놈 기능연구의 핵심 역량 및 상업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생명공학 산업을 21세기에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김대식(성균관대 의대교수-삼성서울병원 진단병리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