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수님, 잘 배우고 싶어요'

  • 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서울대 학생회가 교수들에게 ‘강의정보 제공제’를 공식 요구했다는 소식이다. 이를 보면 디지털시대를 맞았으면서도 대학 강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정보 제공제’란 학기 초 수강신청을 하기에 앞서 교수들이 구체적인 강의계획을 학생들에게 미리 알려달라는 주문이다. 먼저 강의계획을 검토한 다음에 수강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당돌한’ 요구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소리에 귀기울일 만하다.

서울대 학생회의 요구에는 강의에 대한 강한 불만이 깔려있다. 몇년 전 강의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기말시험 중간시험에도 매년 엇비슷한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서울대뿐만 아니라 대학가 전체의 ‘공개된 비밀’이다. PC통신에는 몇해 전 어느 대학의 어느 교수가 했다는 강의노트가 고스란히 올라있다. 중간 및 기말시험에 출제됐던 문제와 모범답안도 볼 수 있다. 연도별로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없음이 드러난다.

이른바 학생들이 ‘족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의욕상실과 편의주의에 물들어 있는 우리 대학의 한 단면을 본다.

이번 요구는 이런 불만사항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이라고 할 만하다. 강의계획을 공개하면 교수들이 아무래도 강의 준비에 공을 더 들이게 될 터이고 내용도 충실해질 게 분명하다. 학생들은 교양과목처럼 여러 교수가 같은 과목으로 강의를 개설한 경우 강의내용이 좋아 보이는 교수쪽으로 수강신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최근 대학도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면서 교수들의 수업내용도 크게 탈바꿈하고 있다. 누가 지적하기에 앞서 교수들 스스로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강의는 기대치에 못미친다는 소리가 많다. 물론 교수들의 수업부담이 과중하고 빈약한 대학재정 때문에 연구교수와 강의교수가 분화되지 않은 탓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강의내용의 질적 향상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쪽에서 수업의 질을 거론하며 좀더 내실있는 강의를 받고 싶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좋은 수업을 받겠다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는 학생들이 변혁의 시대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당국과 교수들에게는 학생들의 욕구와 바람을 채워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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