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눈먼 자들의 도시'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6분


이건 소설이다. 허구다. 사실일 리 없다.

98년 노벨문학상을 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고 나서 한 생각이다. 얘기는 그만큼 처연하다. 어둡다.

우선 상황설정부터 비상하다. 세상의 모두가 눈이 멀고 오직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를 떠받쳐온 윤리의식은 증발하고 모든 가치관은 붕괴된다. 오로지 ‘먹을 것’이 지고지선의 가치가 됐다. 무리 지어 더듬으며 먹이를 찾아 헤매고 어렵게 구한 썩은 식량을 지키느라 서로 죽이고 죽는다. 거리는, 도시 전체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한다. 기고 더듬으며 동물적 적대감을 키워가는 인간들의 마비된 양심을 무섭도록 무거운 침묵이 짓누른다.

▼동물적 적대감 만연한 정치판▼

그런데 이것이 허구인가. 지금 우리의 정치판을 헤집는 비윤리 비양심과 몰가치, 그 속에서 양산되는 쓰레기와 악취, 썩은 자리나마 지키자며 상대를 죽이려드는 동물적 적대감이 만연한 이 현장은 영락없는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닌가. (정치에, 선거에) 눈먼 자들의 염치없는 난장판이 매일매일 빚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대개 싸움이 그렇듯 이번 선거가 빗나간 것도 텃밭감정에서 비롯됐다. “내 땅에 네가 들어와?”식의 비틀린 감정이 출신지 사람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양태로 발전했다. 그리고 급기야 “영도다리에서 빠져죽자”거나 “개밥에 도토리” 운운하는 저급한 말싸움으로 번져갔다. 여야가 너나없이 물고 뜯으며 지역감정이라는 악마의 잔등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그러나 눈먼 자들이라도 귀는 열려있는 법.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이제는 돈을 뿌리고 흑색선전을 퍼뜨리는 단계로 들어갔다.

눈먼 자들은 소리와 냄새로 움직인다. 어느 한 무리가 먹이를 찾았다 싶으면 다른 무리들이 그것을 가만두지 않는다. 달라붙어 함께 뜯는다. 총선이라는 이름을 걸고 벌이는 정치마당에 3년이나 뒤의 대선바람이 부는 연유가 거기에 있다. 한두명이 ‘미래의 희망’이니 ‘태양’을 들먹이자 우르르 다른 패들이 몰려나와 너도나도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있다. 도무지 눈먼 자들 가운데서나마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자도 이 판에 끼어든다. 게임은 계속 혼탁해지고 그나마 남은 질서도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혼돈의 상승작용이 이어지고 급기야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조기 하야까지 들먹이는 상황이 왔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 눈먼 자들이 당장의 먹이에 골몰한 나머지 미래의 식량거리도 발로 차버리려는 데 있다. 나라 빚과 국부유출에 관한 소모적 다툼이 그것이다. 논쟁 자체야 탓할 것이 없지만 그 방법이 무책임하고 치졸하다. 네탓 공방만 벌일 뿐 진정으로 나라 빚을 줄이고 국부를 살찌우려는 대책은 뒷전이다. 오히려 밖에서 정치도 경제도 흔들리며 끝없는 논쟁에 함몰돼가는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죽기살기식 선거를 치르고 나서도 한국이, 한국경제가 온전한 길을 갈 것 같으냐는 비아냥도 적지 않다. 선거라는 코앞의 먹이다툼에만 빠져 내일의 밥그릇을 깨는 어리석음을 정치에 눈먼 자들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가슴속 앙금 어떻게 치유하려고▼

다시 사라마구의 소설로 돌아가 보자.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눈이 먼 채로 쓰레기와 악취 속에서 고통받으며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가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다시 눈을 뜬다. 흔히 말하는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눈이 멀었다 뜨인 사람들은 무엇을 볼까. 눈먼 시절에 저지른 온갖 악행과 비윤리, 공동체의 삶조차 거부하며 먹을 것에만 매달렸던 몰염치가 남긴 찌꺼기로 가득찬 도시를 보지 않겠는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한없는 부끄러움과 회한에 몸을 떨고 다른 이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다.

4·13총선은 이제 20일 후면 끝이다. 정치에, 선거에 눈먼 자들의 요동도 막을 내리고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이 눈먼 자들이 마주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모두가 원수였고 적이었던 시절이 남긴 앙금을 치유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무엇보다 가슴에 남은 부끄러움을 어떻게 지워나갈 것인가.

민병욱<논설위원> 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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