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조성원, 모진훈련 거치며 거듭난 승부사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별명이 ‘만두’에서 ‘4쿼터의 사나이’로 바뀐 현대 걸리버스의 ‘스윙맨’ 조성원(29·1m80).

이제는 그를 빼고는 ‘막강 파워’ 현대 농구단을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농구판에서 명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홍대부고와 명지대를 졸업한 그는 빠르다는 것 외에는 별로 특징이 없는 선수로 벤치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가 ‘뜨게’ 된 때는 98년 4월4일 기아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내리 2연패를 당해 첫 챔피언의 꿈이 멀어지던 순간 조성원은 경기 종료 7.6초를 남기고 천금같은 역전 3점포를 쏘아 올려 농구팬의 가슴에 그의 이름을 깊이 새겼다.

이때부터 현대는 상승세를 타고 챔피언에 올랐고 이듬해에도 역시 조성원의 활약에 힘입어 2년 연속 왕좌에 올랐다. 2연패한 99년엔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에도 올랐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4쿼터의 사나이’. 만두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고교시절부터 붙었던 ‘만두’라는 별명은 이때부터 온데간데없어졌다.

조성원은 올시즌 플레이오프에서도 별명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21일 챔피언결정전을 직행하게 한 SBS와의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조성원은 경기 종료 13초 전 가로채기에 성공한 뒤 자유투를 얻어내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날 조성원은 사실 경기 출전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19일 2차전 3쿼터 3분40초경 홍사붕과 부딪쳐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목에 보호대를 한 그는 연습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날 팀이 어려움에 처하자 ‘해결사’를 자청하고 보호대를 풀고 출전했다.

그만큼 승부근성이 강하다는 얘기.

그는 인터뷰장에 나와서도 질문에 별로 대답하지 못하는 수줍음 많은 내성적 성격. 그가 코트에서 근성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농구판에서 승부근성과 ‘강성훈련’이라면 내로라하는 박성근감독(성균관대)과 진성호감독(현대산업개발)에게 고교와 대학시절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

두 감독은 요즘도 “조성원이야말로 ‘코트의 천사’에서 ‘독종’으로 변한 대표적 선수”라고 말하며 당시 ‘독종’ 만들기 과정을 자주 털어놓는다.

조성원의 대담성에 대한 일화 한토막. 대학시절 훈련량을 견디지 못하고 짐을 싸 숙소를 나온 조성원. 그는 학교 앞에서 공중전화로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나 성원인데 성호 있니? 나 떠난다.”

진성호감독은 그때 “정말 이 녀석이 배포가 대단하구나” 하고 껄껄 웃었단다.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배짱이 있기에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주위에선 입을 모은다.

<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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