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동운/'최저생계비 보장' 손질 필요

  • 입력 2000년 3월 17일 22시 26분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한 가난을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으로 구제해보겠다고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나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은 자칫 근로의욕 감퇴라는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지난해 9월 제정돼 올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의 핵심은 실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가구에 정부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책정한 2000년 가구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가 32만원, 2인 가구가 54만원, 3인가구가 74만원, 4인 가구가 93만원, 5인 가구가 102만원이다. 예를 들면 4인가구의 월소득이 법정최저생계비 93만원에 못 미치는 60만원이라고 할 때 정부가 최저생계비와 실소득간의 차액 33만원을 생계비 주거비 등 명목으로 전액 지원한다. 이 정책이 10월부터 실시되면 정부로부터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계비를 보조받게 될 극빈층 수는 현재 54만명에서 약 154만명으로 3배 정도 증가한다.

이같은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은 한마디로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와 같다. 부의 소득세란 일반적 의미의 소득세와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소득세는 어느 개인의 소득이 소득공제액을 초과할 때 세율에 따라 조세가 부과되는 세제이지만 부의 소득세는 어느 개인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또는 소득공제액에 미치지 못할 때 최저생계비와 실소득의 차액을 정부로부터 보조받는 세제이다.

부의 소득세는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이 동료 조지 스티글러와 함께 1940년대에 발전시킨 빈곤퇴치와 관련된 조세제도이다. 이 이론은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복지정책 개혁안으로 각광을 받아 경제학 관련 교과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부의 소득세에서 보조받는 액수의 크기는 최저생계비의 액수, 근로자의 실소득, 부의 소득세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부의 소득세율이다. 예를 들어 부의 소득세율이 100%라면 앞에서 언급한 4인가구의 실소득이 60만원일 때 최저생계비 93만원과 실소득간의 차액 33만원을 전액 정부로부터 보조받는다. 반대로 부의 소득세율이 0%라면 이 가구주는 최저생계비와 실소득간의 차액 33만원 가운데 단 1원도 보조받지 못한다.

프리드먼은 부의 소득세율 적용을 50% 정도로 권장했다. 부의 소득세율이 100%일 때 실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이 무조건 보장되므로 저소득층은 구태여 땀흘려 60만원을 버는 것보다 놀면서 20만원을 벌어 최저생계비가 전액 보장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프리드먼은 부의 소득세율이 50%라면 실소득과 최저생계비의 차액 가운데 50%가 보장되므로 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의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은 최저생계비와 실소득의 차액을 모두 보장해주므로 부의 소득세율은 확실하게 100%이다. 이같은 정책이 빈곤퇴치에는 다소 기여하겠지만 그동안 선진국들이 복지정책의 문제점으로 경험한 근로의욕 감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이 처음으로 실시되는 올해에는 부의 소득세율을 40%로 적용한 후 부작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검토해 가면서 이를 점진적으로 높여가되 최고세율을 50%로 한정할 것을 정부당국에 권장한다.

이렇게 되면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지원하면서 근로의욕을 유발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재정지출의 지나친 증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박동운 <단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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