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연수원 불을 다시 켜자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1분


‘전설적인 최고 경영자’ 잭이 내년 4월 퇴임한다. 화려한 호칭보다 직원들에게 ‘잭’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세계 초우량기업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64) 이야기다.

지독한 구조조정 끝에 오늘의 GE를 일군 그의 경영혁신 무기 중 하나가 연수원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세계 수준의 경영대학원’에서 ‘일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잠시 쉬러 가는 곳’이 돼버린 GE의 뉴욕 크로톤빌 연수원은 81년 잭의 회장 취임 이후 ‘핵심 인력을 키우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잭의 전략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주입식 강의 대신 현장의 문제를 놓고 임직원들이 토론하도록 했다. 똑같은 과제를 받아든 두 개의 팀은 4주일 후 제각각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이 정도는 어느 경영자나 가능하겠지만 잭처럼 높은 관심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수원에서 잭은 강연과 토론을 자주 했다. 연수 마지막날 발표시간엔 한번도 빼먹지 않고 꼬박 참석했다. 매년 11차례였다.

잭에게 연수원은 인재 발굴의 장소였다. 최고 경영진 30여명과 함께 발표를 지켜보고 비전있는 젊은 간부를 발탁해 승진시켰다. 연수 결과물들은 경영현장에 도입했다.

97∼98년 한국.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연수원 문을 닫았다. 사정이 좀 나은 기업도 직원들 연수비용을 깎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부도위기’ ‘IMF상황’이라는 말이 그 이유로 제시됐다.

결국 국내에서 그중 잘 한다는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교육경비 비율이 96년 0.3%에서 99년 0.08%로 급락했다. 작년중 종업원 1인당 연수비용은 국내에서 잘 하는 기업이 370달러로 미국기업 평균치의 절반.

인력의 양성도, 유지도 못했다. 작년 이후 벤처 열풍으로 두뇌 유입보다 유출이 더 큰 기업이 많이 생겼다. ‘사원 몸값은 각자 알아서 높이라’는 말에 핵심인력도 짐을 꾸렸다. ‘기업의 가치는 시가총액이요, 시가총액은 사원들 지식의 총합’이라는 말에 비춰 보면 그런 기업 주가는 한참 떨어질 일이다. 회사가 인재양성을 안하면 언젠가는 후회한다는 얘기다.

기업측은 “교육투자를 늘렸지만 인재는 다 나가버려 돈만 쓴 꼴이 됐다”고 불평이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해왔거나 벤처에 대항할 조직개편을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국내기업 최고경영자가 잭 웰치 회장의 연수원 활용법을 제대로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임직원과 토론하는 것만 해도 힘들 테니까. 하지만 관료주의 폐단이 심각하고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발휘를 방해하는 중간관리자가 득실거리고 부서간 장벽이 높다랗게 쳐져있는 그런 기업의 최고 경영자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요즘같은 사이버세상에선 기업마다 연수원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말처럼 사원교육 웹사이트를 잘 만들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효과를 보는 기업도 많다. 이 경우 모든 사원에게 최신 정보를 있는 대로 다 제공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있다니 주의할 일이다.

홍권희<경제부 차장>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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