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발등찍은 무분별 개발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11분


지난해 경기 용인시는 주택 건설업체들에 거액의 분양 수입을 약속하는 ‘황금의 땅’이었다. 땅만 파면 분양은 저절로 됐다.

이 바람에 주택 건설업체들은 서울 수준에 육박하는 평당 500만원대의 분양가를 내놓고도 3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몽땅 팔아치웠다. 업체들이 청약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동원했던 속칭 ‘떴다방’들도 분양권 전매를 통해 엄청난 프리미엄을 챙겼다. 한마디로 용인은 분양천국이었다. 대규모 미분양 사태를 경험해야 했던 98년 상황을 생각하면 용인을 발굴한 ‘그들’의 기쁨은 금맥을 찾은 광부의 것보다 덜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약속의 땅’ 용인이 요즘에는 건설업계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모델하우스 개장이 무섭게 휴일의 놀이공원을 연상케 하던 인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최종 청약지원자는 분양가구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 용인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모 건설사의 1순위 청약 접수일에는 지원자가 10명도 안돼 참담한 분위기를 실감케 하기도 했다. 지난해 용인에서만 수백억원의 수입을 올린 업체들은 다시 수백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용인지역에 이처럼 한기(寒氣)가 서리는 것은 무분별한 난개발도 그 이유로 지적된다. 산과 밭을 안 가리고 파헤쳤으니 성한 산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에 살고 싶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분양거품을 조장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려고 했던 건설업계의 비양심이 ‘용인사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거품 덕으로 적정분양가보다 평당 100만원 이상을 받아갔으니 거품이 빠지면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시장의 이치’라는 뜻이다. 얄팍한 수로 소비자를 현혹해 주머니를 불려 온 일부 건설업체들이 이제 어떤 말로 소비자들의 돌아선 마음을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정훈<경제부>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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