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화성/"봉달아, 이젠 좀 쉬고 뛰렴"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03분


이봉주가 달리는 것을 보면 늘 안쓰럽다. 눈물이 난다. 왜 그럴까. 한 시민은 “황영조는 그렇지 않은데 이봉주가 뛰는 것을 보면 목이 멘다”고 말한다.

‘봉달이’ 이봉주. 올 우리 나이 서른하나. 하루 종일 말이 없다. 오로지 뛰고 뛸 뿐. 누가 힘드냐고 물으면 배시시 한번 웃고는 그만이다. 요즘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어도 “그냐앙-”하며 말꼬리를 길게 뺄 뿐 한참을 기다려도 말이 없다. 꼭 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 같다.

그래서 별명도 ‘용이’ 비슷한 ‘봉달이’인지도 모른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그냥 ‘봉달이’ 하고 가만히 소리내어 불러 보면 그 ‘울림’이 그윽하고 편안하다.

이봉주는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짝발이다. 왼발이 248㎜, 오른발이 244㎜. 게다가 거의 평발에 가깝다. 그래서 바닥이 딱딱한 돌길엔 약하다. 99런던마라톤에서 2시간12분11초의 저조한 기록을 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런던 시내에는 로마시대 대리석길이 많은 것이다. 그뿐인가. 눈에 쌍꺼풀이 없어 달릴 때 땀이 눈으로 들어가 영 성가시다. 결국 수술을 하긴 했지만 ‘천연’보다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봉주는 여태까지 공식대회 풀코스를 22번이나 뛰었다. 우승 7번에 준우승 5번. 10위권 밖으로 처진 것도 6번이나 된다. 그러나 한번도 기권한 적은 없다. 그만큼 끈질기다. 90년부터 거의 1년에 2, 3번씩 10년을 뛰었다.

마라토너가 보통 한 대회를 뛰려면 대회 40여일 전부터 하루 40∼50㎞씩 모두 1500㎞ 안팎을 뛰어야 한다. 결국 22번을 완주한 이봉주는 여태껏 3만여㎞를 뛰었다는 계산이다.

마라토너의 수명은 바로 이 뛴 거리로 따진다. 실제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너무 많이 뛰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진다. 스피드가 약해진다. 이봉주가 준우승을 한 5번 중에 4번이 96년(14번째 출전) 이후에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96년 이후 2번 우승한 대회기록이 2시간10분대가 넘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97 99세계선수권을 연속 석권한 스페인의 아벨 안톤은 올 서른여덟이다. 그러나 그는 7번 완주에 5번이나 우승했다. 그 비결은 1년에 결코 2번 이상 뛰지 않는다는 것. 황영조도 기껏해야 8번 뛴 게 전부다.

이봉주가 4월19일에 보스턴마라톤에 나가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인환코치는 21일 “3월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훈련비’ 때문에 그러는 줄 안다. 적어도 10만달러는 받을 것이다. 더구나 우승상금까지 있다. 그러나 이봉주의 올 가장 큰 목표는 시드니올림픽이다. 2월13일에 출전한 뒤 60여일 만의 출전은 아무래도 무리다.

봉달이는 쉴 때도 말이 없다. 소설을 읽거나 조성모 노래를 멍하니 듣는다. 우표도 5000여장이나 모았다.

가끔 동갑내기 강릉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사귄 지 벌써 5년이나 됐다. 힘들 때마다 그녀는 말한다.

“봉달아, 이젠 좀 쉬고 뛰렴.”

김화성<체육부차장>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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