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병종/예술도 나라의 힘이다

  • 입력 2000년 2월 16일 19시 32분


예술이 한 나라의 힘이 될 수 있는가?

있고말고다. 예술의 산업화 현상은 세기말로부터 후폭풍처럼 불어닥치고 있다. 앞으로 전 분야 전 영역에 걸쳐서 예술가적 상상력이 득세하는 사회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 한 편을 수입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자동차를 팔아야 할 만큼의 돈이 든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이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공장의 연기 한 줄 내지 않고 피악(FIAC)이라는 이름의 국제 아트페어를 열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지 오래이고 바그너의 바이로이트 축제는 그 티켓 값은 고하간에 6년 전에 공연예약이 끝나버릴 만큼 세계적 인기 상품이 되어 있다. 굳이 다른 나라 예만을 들 필요도 없다. 임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의 청화백자매병(靑華白瓷梅甁) 하나를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경매에서 다시 사오려면 뒤로 나자빠질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는 총칼 없는 디자인 전쟁에 접어들고 있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디자인 감각에서 떨어져버리면 일류 상품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애시당초 국제 경쟁력을 잃고 마는 것이다. 자동차에서부터 고급 의류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한 해에 전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디자인 로열티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전통적으로 예(藝)를 사농공상의 말석에도 놓지 않았던 우리네 형편으로서는 예술이 고부가가치의 산업이 된다는 점에 대해 아직도 ‘어, 그래?’ 하는 정도로 떨떠름해 한다.

해마다 엄청난 예술인력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예술적 자원들의 장래에 대해 사회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주목하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 무엇일 뿐이다. 형편은 종합대학 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산이나 인력배분에서 거의 늘 실용학문 분야에 그 우선순위를 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의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기대를 걸만한 분야의 하나가 예술인 까닭이다.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인력을 육성하여 국제무대에 진출시키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반도체 수출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자와 세이지를 세계적인 지휘자로 키워내고 파리에 갤러리 요미우리를 진출시킴으로써 일본이 얻게 된 문화국가적 이미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음을 떠올려야할 것이다. 일본이 그토록 맹렬하게 국제사회에 자국문화 진출을 시도했던 것도 경제 성장에만 급급하다 이코노믹 애니멀이라고까지 실추되었던 국가이미지를 문화의 힘으로 개선시키고자 한 까닭에서였다.

사실 우리만큼 문화예술적 잠재력과 천분이 뛰어난 민족도 흔하지 않다. 들풀처럼 만발한 그 예술의 자원에 조금만 관심과 애정을 가져 물주고 보살핀다면 곧 무성한 나무로 자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예술 진흥의 새 장이 청년 예술가를 키워내는 대학 안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60, 70년대에 공학 분야에 힘을 실어 주었듯이 2000년대에는 예술계 대학에도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비단 산업화의 차원에서만 예술진흥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정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선진국마다 앞다투어 미술관을 짓고 음악당을 세우는 것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무려 4000여개의 크고 작은 미술관이 세워져 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예술체험이 얼마나 인격형성에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예술교육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과 교류하고 있는 도쿄예대나 규슈예술공과대 같은 곳이 일년에 예술계열대학에 투자하는 예산은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감성과 정서가 메마른 시대일수록 예술향수 욕구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종합대학 안에서 타 전공생으로 넘쳐나는 미술 음악 교양과목이 이를 증명한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선율이 그의 과학적 사고에 영감의 깊이를 더해주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대학에서도 예술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김병종(화가·서울대 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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