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 2000]뉴햄프셔 예비선거 유세현장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미국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이 1일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를 앞두고 전례없는 열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에서는 앨 고어 부통령과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이, 공화당에서는 조지 W 텍사스 주지사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서로 허용오차 범위 내에서 지지율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에서는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대패, 벼랑에 몰린 브래들리가 강력한 성토작전으로 전환해 고어를 끌어내리고, 공화당에서는 부시가 아이오와에서 잡은 승기를 계속 밀어붙여 매케인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 지난달 30일 CNN과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예비후보 지지율이 고어와 브래들리는 48 대 47, 매케인과 부시는 38 대 34로 나타났다. 로이터 통신의 조사에서는 고어와 브래들리는 49 대 42, 매케인과 부시는 38 대 36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인구 120만명으로 50개의 주 가운데 42번째에 불과한 뉴햄프셔주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각 당 예비후보 지지자들의 열성과 이들을 환영하는 이곳 주민들의 자동차 경적 소음 등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미국은 물론 세계각지에서 파견된 1000여명의 기자들의 열띤 취재 경쟁도 ‘민주주의 축제’에 가세했다.

브래들리는 뉴햄프셔주 이후 다음달 7일까지는 민주당의 예비선거 일정이 없어 이번에 만회하지 못하면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기 때문에 그동안 묻어뒀던 고어의 96년 선거자금 불법모금 의혹을 ‘드디어’ 건드리면서 강력한 반격을 펼치고 있다.

그러자 민주당의 톰 대슐과 리처드 게파트 상하 양원 원내총무는 브래들리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자제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고어를 노골적으로 거들고 나섰다. 이에 브래들 리가 즉각 우군인 밥 케리 상원의원을 시켜 반박 기자회견을 개최함으로써 선거 분위기는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예비선거 하루전인 31일 브래들리의 불규칙한 심장박동 문제가 다시 이슈로 등장,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보증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화당의 부시 텍사스주지사는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까지 동원,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우리는 뉴햄프셔주를 웃으면서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미 언론은 그의 추격속도가 빨라 1일 예비선거 당일에는 뒤집기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포기하고 뉴햄프셔주에 집중해온 매케인은 “선거자금 문제를 안고 있는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금한 부시가 아니라 나”라면서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전국적인 지지도에서 고어와 부시에 뒤져있는 브래들리와 매케인은 가장 당파색이 엷은 뉴햄프셔주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지명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 사람은 불행히도 지지기반이 겹쳐 서로 경쟁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들의 주요지지층인 뉴햄프셔주의 무당파 유권자는 아이오와주와는 달리 민주 공화 양당 어느 한쪽에 표를 던질 수가 있다. 이에 따라 전체유권자의 37%인 무당파의 표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은 물론 양당의 선거결과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맨체스터(미뉴햄프셔주)〓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뉴햄프셔-大選 상관관계▼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는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예측케 하는 척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권자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첫번째 예비선거인데다 대통령이 되려면 기필코 뉴햄프셔에서 이겨야 한다는 불가사의한 전통 때문이다.

1916년 미국에서 최초로 예비선거를 실시한 뉴햄프셔주는 52년 개방형 직접투표를 하기로 주선거법을 개정했다. 이후 96년까지 뉴햄프셔에서 1등을 하지 못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92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유일하다. 클린턴은 당시 폴 송거스 상원의원에 이어 2위를 했으나 결국 대통령이 됐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는 주로 열성당원들의 지지도를 반영하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적이 많다.

80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조지 부시 후보에게 지고도 뉴햄프셔에서 1위를 한 뒤 여세를 몰아 백악관에 입성했다. 88년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는 아이오와에서 밥 돌 후보에게 졌지만 뉴햄프셔주의 승기를 이어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

뉴햄프셔주 패배가 경선 탈락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52년 재선을 노리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곳에서 에스테스 케포버스 상원의원에게 1위를 내준 뒤 후보 대열에서 사퇴했고 68년 린든 존슨 대통령 역시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패한 뒤 중도 사퇴했다.

그러나 96년 공화당의 보수논객 팻 뷰캐넌이 승리하는 등 갈수록 지역적 보수성향이 강해지고 있어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를 후보지명전의 향배를 가늠할 척도로 평가하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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