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래서 강하다]첨단기술 바탕 생산성 혁신 가속

  • 입력 2000년 1월 2일 23시 04분


《미국 경제가 이번 달에도 플러스 성장해 건국 이래 가장 긴 107개월 연속 성장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은 연간 1% 안팎, 실업률도 최근 30년간의 최저수준인 4.1%다.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의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실업률이 낮으면 인건비가 올라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물가가 오르면 판매가 줄어 기업수지가 악화되기 때문에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이 다시 늘어난다는 기존 경제이론의 틀을 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경제(New Economy)’의 등장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이 미국 경제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는가. 15회 시리즈로 점검한다.》

트럭운전사 빌 프리젤(41·미시간주)이 한 일은 6개월전 온라인 전국수송정보교환 시스템에 가입한 것뿐이다. 그러나 프리젤은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이제는 제때 끼니를 챙길 시간조차 없다. 대형트럭 1대뿐이던 그는 6개월만에 트럭 3대를 거느린 사장이 됐다.

비결은 인터넷. 최근 그는 미시간주 피전을 떠나 일리노이주 시카고 하이츠까지 갔다오는 동안 7군데를 들렀다. 그 전에 돌아올 때는 항상 빈 차였던 구간이다. 그러나 수송정보교환 온라인 덕택에 그는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6개월 동안 프리젤은 평소보다 6만달러(약 6800만원)를 더 벌었다.

▼비농업 생산성 증가율 5%육박▼

프리젤의 사례는 ‘신경제’의 혜택이 미국 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져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미국 항공사들은 온라인으로 티켓을 발부해 티켓 한장에 7달러씩을 절약하고 있다. 석유회사들은 3차원 시뮬레이션 기법을 활용해 석유개발비용을 유정(油井) 한 곳당 5000만달러에서 300만달러로 줄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레이저 광섬유 인공위성 등 첨단기술로 미국 경제는 같은 시간에 전보다 많은 재화를 생산하고 실어나르며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성의 혁신을 이루고 있다.

90∼95년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2%였다. 70년대 연평균 증가율 1.1%나 80년대의 1.3%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3·4분기 비농업분야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4.9%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놓고 미국 언론은 그동안 수치로 잡히지 않던 생산성 혁신의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흥분했다.

▼新경제 혜택 골고루 퍼져▼

미국 노동부가 발행하는 월간지 레이버 리뷰는 99년 7월호에서 미국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놓고 각국을 비교했다. 한국은 37,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일본도 72에 불과했다.

물론 통계작성 기준시점인 96년에 벨기에(107%) 노르웨이(106%) 프랑스(103%) 네덜란드(101%) 등 4개국은 미국을 앞질렀다. 그러나 단위시간 대신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GDP를 비교하면 미국이 단연 선두였다. 미국인들이 4개국 국민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는 뜻이다.

미국인의 평균노동시간은 서방선진7개국(G7) 가운데 가장 길다. 일벌레로 소문난 일본인을 추월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의 발표에 따르면 97년 미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1966시간으로 일본인 평균 1889시간보다 많았다.

▼노동인구 비율 63%… G7 최고▼

미국인의 노동시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국 가족 및 노동연구소(Family and Work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77년 43.6시간에서 97년에는 47.1시간으로 늘었다.

미국은 전체인구 중 노동인구의 비율이 63.6%로 G7 가운데 가장 높다. 일하는 사람은 많고 부양해야 할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매년 외국에서 젊고 건강한 노동자 이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여성 취업률도 세계에서 스웨덴 다음으로 높다. 반면 90년대 내내 실질임금 수준이나 임금상승률은 G7 중에서 꼴찌였다.

생산성이 높고 오래 일하는 데도 인건비 부담은 적다. 그러니 미국경제가 뻗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라는 부강해도 국민은 고단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이발 세탁 사옥내서 공짜로…노동시간 늘리기 묘안 백출▼

노동생산성이 올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는데도 왜 미국인의 노동시간은 늘어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디젤 엔진 제작사인 내비스타는 94년에 1200명으로 10만개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1800명으로 30만개를 생산한다.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인력도 늘릴 필요가 있지만 구인난 때문에 기존 인력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있다.

요즘 미국의 노동인구 분포는 다운사이징의 여파로 중간관리자가 사라지고 하급기술자와 고급관리자(또는 고급기술자)로 양극화되고 있다. ‘모래시계형’이다. 이 가운데 하급기술자의 노동시간은 줄고 화이트 칼라층의 노동시간은 늘어나는 추세. 화이트 칼라층은 잔업수당을 주지 않고도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800명의 고급관리자를 상대로 한 Exec―U―Net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56.2시간이나 됐다.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한 묘안도 백출하고 있다. 휴스턴에 있는 BMC 소프트웨어사(社)는 농구나 골프를 연습할 수 있는 체육관을 갖춘 복합건물로 사옥을 지어놓고 은행 이발 세탁 손톱손질 서비스까지 모두 공짜로 제공한다. 각 층에 공짜 바나나와 음료수가 널려 있다. 마사지와 의사의 진찰도 공짜다. 직원들을 최대한 회사에 묶어두기 위해서다. BMC의 직원들은 하루 평균 10∼12시간이나 일한다.

캔자스에 있는 건축설계회사 굴드 에반스 굿맨은 사내에 슬리핑백과 자명종을 갖춘 대형텐트 3개를 쳐놓고 있다 일하다 사무실에서 그냥 자라는 뜻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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