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경석/연금민영화 재분배효과 없다

  • 입력 1999년 12월 13일 20시 45분


지난 달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아시아 태평양지역 사회보장 기관장회의는 각국이 직면한 연금재정의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칠레 등 일부 국가에서 도입한 민영보험 방식이 전통인적 사회보험 방식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

칠레는 종전의 사회보험 방식에 의한 연금제도를 재정상 이유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81년 연금개혁을 단행해 민영보험 방식으로 전환했다. 멕시코 페루 헝가리 폴란드도 유사한 방식을 시행한다. 이들 나라가 민영보험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과도한 재정 부담을 덜고 방대한 기금을 적립해 국가의 저축 수준을 높여 투자재원으로 활용하면 자본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영보험 방식 연금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이 지난 칠레를 보면 상당한 성과를 보였고 국민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초기의 성과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500만명 가입자 중 실제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은 300만명에 불과하고 자영자는 150만명 중 5만명만이 가입하고 있다.

또 개인계좌별로 적립하는 방식이어서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고 노후에 적정한 수준의 연금지급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저소득자의 연금액이 지나치게 낮아질 우려가 있다. 더욱이 민영보험의 성격상 가입자가 보험회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어 보험회사간에 가입자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으로 보험료 수입의 15∼20%를 관리비용으로 쓴다. 기금 수익률도 초기 15년간 연평균 12.5%의 높은 실질 수익률을 올렸으나 95년 이후 실적은 연평균 1.15%에 불과하다.

이번 회의에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민영보험 방식의 운영 실적으로 볼 때 아직은 단정적 평가를 하기 어려우나 민영보험이 사회보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사회보험을 시행하는 국가들은 제도 운영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존 방식을 포기하지 말고 각국 실정에 맞게 보완해 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형의 전통적인 사회보험에 의해 국민연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입 대상자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소득재분배 장치가 들어 있고 법률에 의해 노후에 적정 수준의 연금지급을 보장하는 등 비교적 사회보장의 원칙에 충실한 편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완전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자영자의 소득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 보험료를 형평하게 부과하고 연금재정을 안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연금제도는 제도 성숙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가입자 개개인의 평생을 관리하는 제도이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성과만 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아니된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외국의 운영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속 보완해나가면 안정적인 백년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경석(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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