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갑영/'코스닥 열풍' 거품도 경계를

  • 입력 1999년 12월 13일 19시 56분


주식거래는 14세기 베네치아에서 시작됐지만 대중화된 증권시장은 17세기 암스테르담에 처음 등장했다. 이 무렵 네덜란드에는 튤립의 열풍도 함께 불었다. 터키에서만 재배되던 튤립이 들어오자 침착하던 네덜란드 사람들도 금세 그 꽃에 매료됐다. 사실은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기보다는 너도나도 꽃으로 돈을 벌겠다고 나선 것이다. 튤립은 교양의 상징으로, 최고의 선물로, 급기야 미래를 약속하는 매력적 투자대상으로 화려한 변신을 거듭했다. 수요가 폭발하니 가격은 폭등했고 알뿌리로 이듬해를 겨냥하는 입도선매까지 횡행했다.

▼인터넷관련株 인기▼

귀족층에서 하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2중 3중으로 알뿌리를 선물거래하면서 열풍은 극에 달해 알뿌리 하나의 가격이 무려 5만달러까지 치솟았다. 가난은 사라지고 온 국민이 한동안 부자가 돼 들떠 있었다.

실질가치가 없는 거품은 어느날 갑자기 꺼져버린다. 어느 선원의 희화가 이를 대변한다. 몇 년만에 먼 항해에서 돌아온 선원 길더는 선주로부터 융숭한 식사대접을 받았다. 그가 떠난 후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주인 집의 튤립 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아뿔싸 국내 사정에 어두웠던 길더가 튤립 뿌리를 양파인 줄 알고 먹어 버렸던 것이다. 선주 집 알뿌리의 거품은 그렇게 사라졌다.

시장에서도 알뿌리의 환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비싼 선물계약을 못지키고 파산하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너도나도 튤립의 투매에 나섰다. 그 한파에 가격은 폭락했고 거품을 좇던 막차 손님들만 망연자실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네덜란드는 이 때부터 튤립왕국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튤립 대신 때로는 금광을 좇고 새로운 발견이나 첨단기술에 열광한다. 지금은 인터넷에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열풍은 항상 알 수 없는 미래의 신비를 안고 불어와 거품과 실체를 판단하기조차 힘들다. 인터넷 관련 기업의 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가가 매출액의 25배에 달하는 것은 차치하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적자속에서도 매출액의 33배를 넘고 야후는 150배에 이른다.

한국의 코스닥 시장도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95%를 차지하는 시장에서 인터넷 관련 주식은 벌써 20배이상 폭등했다. 벤처 육성으로 지피어진 불길이 정보화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나스닥의 외풍까지 가세해 활활 타오른다.

인터넷 주식공모에는 수십억원의 ‘묻지마 투자’가 몰려들고 있고 인터넷과 벤처로 포장된 기업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태어난다. 물론 이 열풍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잠재력-불확실성 상존▼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경제의 패러다임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지식집약적인 생산구조에서는 공급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감소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익성보다는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반영하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기업의 주가는 ‘관심’을 갖는 고객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는 이론도 등장하고 있다.

누군들 ‘생각의 속도’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과소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벤처는 역시 말 그대로 꿈과 모험을 함께 동반하는 사업이다. 성장성이 높은 만큼 누구라도 진입할 수 있어 경쟁도 더욱 치열하다. 표준화에 성공하는 슈퍼 스타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의 세계이다. 잠재력은 있지만 불확실성도 높은 것이다. 세계적인 인터넷 관련 기업의 주가도 4∼5배 사이를 널뛰기하고 있지 않는가.

코스닥 열풍으로 한 두 사람의 빌 게이츠라도 탄생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아가 벤처가 중심이 되는 가치사슬을 새롭게 형성하며 새 천년 내내 그 열기가 지속된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변해도 높은 수익이 높은 위험을 동반한다는 경제원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주식이 언제까지 올라갈 수 있겠는가.

거품으로 흐려진 눈으로는 돌과 진주를 구별할 수 없다. 겨울의 찬 바람을 쏘이며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열풍이 행여 튤립을 좇고 있는 행렬은 아닌지. 튤립은 작은 한파에도 쉽게 시들어버린다.

정갑영(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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