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해명/修能시험이 쉬워선 안되는 이유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방향은 전국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사다. 수능의 출제방향에 맞추어 교사가 수업을 하고 학생들도 공부를 한다. 학부모들로서도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좋은지, 봉사 활동인 특기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학원이나 교육관련 기관들도 수능의 출제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공교육 전체도 영향을 받는다. 중고교의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초등학교나 유치원 교육과정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교육부와 수능의 출제를 책임진 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매년 수능을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언한다. 수능이 쉽게 출제돼야 한다는 평가원의 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수능이 어려워 과외가 성행한다는 논리다. 둘째,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능이 쉬워야 한다는 논리다. 학교의 정규교육과정만을 이수하고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능이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수능이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논리도 가세한다. 그러나 농어촌의 가난한 학생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좋은 고교에 입학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시험이 아무리 쉬워져도 시험제도가 존속하는 한 경쟁은 있게 마련이고 더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노력이 있게 마련이다. 수능이 쉽게 출제돼 내신에 의해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고 하자 내신을 위한 과외가 치열해졌다. 특기가 있어야 대학 입학이 쉬워진다고 하자 특기 과외가 성행한다. 아무리 시험이 쉬워도 시험이 있는 한 경쟁은 있게 마련이다.

학교는 특기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가르쳐서 인간을 만드는 곳이다. 특기나 적성은 가정이나 사회의 책임이다. 특히 중고교 교육과정은 교과 지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단순한 사실의 암기가 아니라 고등정신 능력이나 창의성을 포함한다. 중고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길은 학생들에게 철저한 지적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특기나 흥미 위주로 중고교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논리는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운영하겠다는 소리다. 일선 고교생들이 지적인 경쟁을 포기하고 안이한 학습태도를 보인다는 보도는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게 한다.

물론 수능이 어려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학 능력 시험의 기본 목적에 부합되는 좋은 문제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능력 시험이란 글자 그대로 대학에서 학문을 하기에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를 시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능은 고등정신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좋은 문제라야 한다. 암기 위주의 시험이어서는 안되고 가능하다면 과외의 열기도 식힐 수 있고, 교육과정도 정상화시킬 수 있으며, 평준화도 달성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문제를 쉽게 출제해 학생들의 지적능력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중고교 학생들의 지적인 경쟁을 소홀하게 만드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짓이다. 과외를 잡으려다가 교육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까 두렵다.

이해명<단국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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