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조선백자와 스트라디바리우스

  • 입력 1999년 11월 15일 20시 04분


조선백자의 거래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수십만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국제 경매시장에서 수십억원에 거래되는 것도 있다. 이런 가격차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역시 백자가 띠고 있는 색채의 우열에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백자의 흰색은 신비롭다. 역대 문필가들은 ‘선비의 지조를 닮은 깨끗하고 정직한’ 흰색이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의 차이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미술이 색채로 이뤄진다면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손에 의존하는 미술과 달리 음악은 같은 기량이라도 누가 탁월한 명기(名器)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연주 결과가 달라진다. 바이올린의 경우 최고 명기는 17,18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지방에서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지금까지 600여점이 남아 있다. 최고 100억원대에 거래될 만큼 희소가치가 높다. 이 역시 음악에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한 다른 바이올린과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싸구려 외제 바이올린을 수입해 국내 학부모들에게 명기라고 속여 판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음대 교수까지 악기판매상과 한통속이 되어 진품임을 주장했다고 하니 ‘소리’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못하는 학부모로서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외국 음악가들은 ‘올드 악기’(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골동품 악기)의 엄청난 가격에 질린 나머지, 싸면서도 음질이 좋은 현대 악기를 많이 쓴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에게 좋은 악기를 사주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심을 탓할 수만은 없다.

▽가짜가 판치는 현실은 우리 정치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저마다 ‘깨끗한 색채’와 ‘아름다운 소리’를 외치고 나선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차이점은 이들의 ‘진짜’ 행세에 이골이 난 보통 사람들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내는 감식안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인들은 여전히 구태를 반복하고 있으니 정말 딱한 노릇이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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