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인간성을 말살하는 고문범죄와 이를 비호하는 은닉범죄는 더이상 발디딜 곳이 없다는 점이 재입증됐다. 고문범죄자는 지구상 어디로 도망가든 끝까지 추적 검거해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국제규범의 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고문범죄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국내 일부 시민단체 등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가는 상황이다. 남미 칠레의 전 군부독재자 피노체트가 정치범에 대한 고문 등 혐의로 결국 나라밖 영국에서 체포된 뒤 스페인으로 인도돼 국제재판을 받고있는 사례는 인권침해가 인류의 공적(共敵)임을 잘 말해 준다.
이제 ‘이근안 수사’의 핵심은 박씨가 몇몇 옛 동료와 함께 개인적으로 비호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조직적 배후세력이 있었는지 여부에 있다. 도피 직전 이전경감이 자수하려던 것을 박씨가 나서서 굳이 만류한 점, 그 현장에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간부 2명이 배석한 점, 치안본부의 곤란한 입장을 강조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조직적 비호 가능성에 더 비중이 실리는 편이다. 그렇다면 최종적 배후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1500만원은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부터 추적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전경감의 대공수사관 시절 고문행위가 상부조직의 지시 또는 묵인하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는 단순한 ‘고문의 도구’에 불과했던 셈이 된다. 그 경우 대공(對共)수사와 고문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연유는 무엇이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만의 하나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 등도 이전경감의 고문범죄와 비호은닉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엄청난 폭발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검찰수사 결과 한 동료는 도피 5년째인 92년 이전경감을 자택으로 찾아간 일이 드러났다. 또한 박씨와 편지로 공소시효에 관한 문답을 나눌 정도의 접촉도 가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경찰이 그를 검거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근안 미스터리’를 푸는 일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