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태욱/왜 하필 중선거구제인가?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최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확정한 정치개혁안의 핵심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중선거구제의 도입이다. 불과 수 년전 일본에서도 정치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개혁 내용이 중선거구제의 철폐였다. 이웃나라에서는 개혁 대상이었던 중선거구제가 한국에서는 개혁의 목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이 중선거구제를 폐지하고 대신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를 택한 것은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선거구당 2∼5명을 뽑는 일본의 중선거구제 하에서 정당들이 복수의 후보를 내세우는 바람에 당내 경쟁이 극심해졌다. 정치가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다른 당은 물론 같은 당 소속 후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동일 정당에 속한 경쟁자들끼리 당의 공식 정책이나 이념으로 승부를 겨룰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적인 차별화 수단을 강구했다. 주로 채택된 방법은 ‘개인후원회’를 결성해 지지자 수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특정 이익집단들과 선거구민들을 자신의 후원회 조직으로 묶어놓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사익성(私益性) 정책을 제공하거나 엄청난 돈을 뿌렸다. 이익집단 정치와 금권정치, 그리고 파벌정치가 고질화해 일본의 국제 경쟁력과 효율성 높이기에 걸림돌이 됐다. 표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사들인 개별이익 집단들의 사익 추구행위가 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버려진 일본의 선거제도를 한국 공동여당이 주워담으려 한다. 돈 안쓰는 정치, 인물이나 지역정당이 아닌 정책정당의 발전, 무한경쟁시대에 필요한 국력의 결집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물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가 이러한 개혁목표에 부합하는 제도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전 국회의원의 3분의 2를 중선거구제에 의해 뽑자는 주장은 도대체 개혁하자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일본에서 이미 40여년간에 걸친 실험을 통해 중선거구제는 돈 많이 드는 정치, 정책이 아닌 인물중심의 선거, 공익이 아닌 사익성 정책의 남발을 유도하는 선거제도라는 것이 입증됐다.

특히 중선거구제 도입 이후 정부가 각종 정책개혁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도 우려된다. 개혁의 성공을 이루자면 정책결정권자들이 특정 산업 혹은 지역에 근거한 개별 이익집단들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이익집단들에의 정치적 의존이 심할 수밖에 없는 중선거구 출신의원들이 입법부의 대다수를 차지할 정치현실에서 그러한 자율성이 얼마나 보장될 수 있겠는가.

국민회의에 묻고 싶다. 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의 도입논의를 중단했는가. 전체 의석수가 일단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배분되고 각 당은 배정된 의석수의 50%까지를 소선거구 출신으로 채우게 되는 독일식을 도입한다면 개혁목표를 달성하고 당내경쟁 심화와 사익추구 집단들의 정치력 강화에 따른 폐해도 막을 수 있다. 굳이 중선거구제를 고집한다면 ‘단일정당, 단일후보’ 원칙을 채택해야 한다.

최태욱(한동대교수·국제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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