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李根安 수수께끼

  • 입력 1999년 11월 1일 19시 07분


시대가 바뀌어도 전쟁에서 최상의 계책은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이다. 우리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상대방의 허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병법 전문가들은 허허실실이야말로 손자병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적의 실한 곳은 피하고 허를 타격하는 피실격허(避實擊虛)는 바둑을 두는데 있어서도 좋은 계책이다.

▽이 병법을 쫓기는 범인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구사한다. 허허실실 전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남기 위한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석달여전 탈주 2년반만에 붙잡힌 강절도범 신창원(申昌源)과 며칠전 11년만에 자수한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이 공통적으로 택했던 은신처중 한 곳이 도시의 아파트였다. 하필이면 보는 눈이 많은, 그래서 위험한 아파트를 택했을까.

▽그러나 결과는 ‘안전’했다. 신창원은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녀와 은신중 검거됐지만 아파트 주민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가 살고 있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스레인지를 점검하러 갔던 기술자의 신고가 아니었다면 안전했을 것이다. 이전경감은 도피생활 처음 1년간은 서울 강남의 한 공무원아파트에서 지내며 종종 외출도 했으나 무사했다. 사람은 많이 살아도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아파트의 허를 찌른 셈이다.

▽이전경감의 경우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비호세력의 존재 여부다. 그의 도피생활 초기 1년간 동료 경찰관들은 부인에게 매월 생활비를 보태줬다고 한다. 아파트 은신과 일치하는 기간이다. 나머지 10년간은 자택 창고방에서 박스로 가리고 숨어 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그를 봤다는 제보도 있다. 자수 시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꼬리를 문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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