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차병직/고문없는 세상 만들려면…

  • 입력 1999년 11월 1일 19시 07분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립니까?’

지난 시절 고문추방을 선언하며 어느 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그 한마디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윽한 신뢰가 깃들어 있다. 동시에 국가권력의 부도덕과 위선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고문이라는 이름의 ‘악’에 대한 인간 사회의 그러한 이중적 태도는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하다.

▼이중적 사고 안하는지▼

11년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종적을 감추었던 사람이 자수를 했다. 그의 이름은 이근안. 마지막 직책은 경기도경대공분실장이었으나 항상 ‘고문기술자’로 불렸다. 70년 경찰공무원으로 발을 내디딘 그는 폭력을 통해 사람의 입을 여는 기술을 익혔고 국가권력은 필요할 때마다 불러서 도구로 이용했다.

그럴 때만 하더라도 그의 기술은 국가 이익을 위해 공헌하는 숨겨진 보검으로 통했을 것이나 세상이 조금 바뀌자 그 악의 속성이 낱낱이 드러났다.

언젠가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국가보안법 관련 자료수집에 보태라고 빛바랜 스티커 몇 장을 가져다 주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고문경찰 이근안 현상수배’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작한 지 아마도 10년은 족히 됐을 그 전단은 길가의 벽에서는 오래전 사라졌을 것이나 폭력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가슴에선 잊혀질 수 없었다. 그 세월 동안 깊은 곳에 잠적했다느니, 해외로 도피했다느니, 심지어는 사망했을 것이라느니 추측도 무성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나타났고, 남은 법적처리만 잘 마무리하면 고문의 역사는 종결될 수 있을까.

우리가 고문을 혐오하는 것은 입으로 전해지는 육체적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흔히 말하듯 그것은 인간성을 여지없이 파괴하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고문이 자행되면, 고문을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문을 하는 사람도 수치심을 잃게 된다. 서승씨의 표현대로 ‘원자폭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문드러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전율한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밀폐된 지하방 속에서 팔을 뒤로 묶인 채 쓰러진 사람의 얼굴을 지그시 밟고 있는 구둣발을 생각해 보라. 그 두 인간 사이에, 그리고 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 인간들 사이에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7,18세기까지 자백은 증거의 왕이었다. 자백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었고, 자백을 받아내는 데 고문은 유효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양심이란 것이 있어 그 폐해를 반성하게 되었고, 우리 헌법과 법률도 고문을 단호하게 배척하는 뜻을 부동문자로 만방에 선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문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국민에게는 가장 큰 배신행위가 되는 것이다.

▼고문결과 효용없도록▼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고문의 추방을 외친다. 그토록 치욕스런 역사, 잊을 수 없는 고통, 안타까운 상처, 그리고 애절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고문은 아직 근절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문을 배격하고, 그리하여 고귀한 그 무엇을 지키고자 한다면,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한 반성을 함께 해야 한다. 정말 우리 모두가 고문을 싫어하는 데도 불구하고 고문은 왜 자취를 감추지 않는 것인가. 아직도 마음의 한 구석에는 고문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진실을 밝히는 데 효용이 있다면 크게 남용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미련은 없는가.

고문을 추방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문을 하는 자에게 고문의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면 결국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고문을 하고 또 고문을 당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제도 내에서 가능한 바람직한 방법이란, 고문은 국가권력에 의한 것이므로 고문의 결과가 아무런 효용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찰은 총기의 방아쇠를 당기듯 고문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가. 국가정보원은 도감청하듯 고문을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나. 검찰은 인권을 보장한다면서 고문을 방조한 것이 아닌가. 법원은 어쨌는가. 고문에 의한 증거를 단호히 배척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국가기관은 자성해야 하고, 국민들은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아야 한다. 이근안의 구속이 사건의 종결 또는 고문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는 하나의 교훈이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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