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교생 술집'의 대형참사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화성 씨랜드 화재사고의 슬픔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인천 인현동의 한 상가건물에서 50여명이 숨지는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씨랜드 사고의 희생자는 유치원생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대부분 중고생들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어른들로서는 어린 청소년들을 화재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데 대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과 함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은 상가건물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서 발화된 다음 계단을 타고 2층 호프집을 덮쳤다고 한다. 호프집 출입구가 순식간에 불길과 유독가스에 막혀 버리자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던 100여명의 학생들은 그대로 안에 갖혀 많은 사망자를 내고 말았다. 불이 난 건물은 음식점 당구장 등이 들어 있는 4층짜리로 도심 어디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상가건물이다. 다른 건물에서도 언제든 비슷한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또 한번 고발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불이 난 노래방에는 확산소화기 15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공사 인부들이 작업에 방해된다며 모두 제거했다고 한다. 참사를 스스로 부른 셈이다. 법규에도 문제가 있다.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결정적 원인은 호프집에 별도의 비상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소방법은 5층이상 건물에 대해서만 비상계단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어 참사가 난 건물과 같은 4층이하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해당 호프집은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별다른 도구를 갖지 않은 피해자들이 창문을 깨고 탈출할 수도 없었다. 이런 불합리한 건물 구조변경이 어떻게 소방점검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부상자를 포함한 100여명의 피해자가 고교생들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미성년자들은 술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들에게 술을 팔 수도 없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호프집에는 고교생은 물론이고 중학생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업주는 무허가 영업으로 폐쇄명령을 받고도 불법 영업을 하고 있었고 경찰과 관할 구청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수방관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중고생의 술집 출입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 사고들을 반복해서 당하면서도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모든게 ‘돈’이다. 돈앞에서는 ‘생명’이나 ‘안전’도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게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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