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본질이 흐려져선 안된다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한 기자가 ‘언론대책’문건을 작성해 권력측에 보내고 또다른 기자는 그것을 빼내 야당측에 넘겼다. 문건을 건넨 기자와 야당의원간에는 1000만원이란 거액의 돈거래가 있었다. 돈을 준쪽에서는 문건과는 관계없이 기자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사람이 평소 ‘정보 암거래’를 해오지 않았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는 무엇보다 기자와 권력, 정치권의 관계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 당혹감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비록 극소수 기자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라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언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정화, 내부 자정(自淨)운동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는 하더라도 취재원으로부터 촌지나 선물을 받거나 골프 등 갖가지 형태의 접대나 향응을 받는 낡고 잘못된 관행은 차제에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특히 ‘권력지향적 정치브로커’같은 기자 아닌 기자는 마땅히 퇴출돼야 한다. 아울러 권력과 정치권도 더 이상 기자를 ‘내 사람’ ‘우리 사람’으로 만들려는 ‘다양한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이번 사건을 ‘정언(政言)유착’에서 빚어진 해프닝쯤으로 몰아가려 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본란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어떻게 작성됐으며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본질적 문제를 규명하려면 몇 가지 의혹이 실체적 진실로 드러나야 한다.

첫째, 언론장악 문건이 과연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 개인의 작품이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무엇보다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의 역할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문제의 문건 원본의 행방에 대해서도 이부총재측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부총재는 이미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전임 국가정보원장인 집권여당 부총재가 사건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둘째, 이종찬부총재―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차장―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3각 관계’ 실체도 밝혀져야 한다. 이차장이 양측을 오가며 ‘정보 장사’를 했을 개연성도 그렇지만 특히 여권이 정의원과 이차장의 돈거래 사실까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야당의 주장처럼 여권이 ‘이차장의 약점’을 잡아 사건의 본질을 희석 또는 왜곡시킬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셋째, 정형근의원의 경우 “문건의 최종책임자는 이종찬부총재”라는 ‘확신’의 근거를 보다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는 한나라당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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