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킨지보고서]킨지는 어떤 인물?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앨프리드 킨지(1894∼1956)는 타고난 ‘수집광’이었다. 곤충 연구시절 무려 250만마리의 말벌을 모았던 그는 한때 10만명의 남녀를 인터뷰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킨지연구소의 아트컬렉션도 그가 개인적 소장품을 단돈 1달러에 연구소에 기증한 것이 출발이었다.

킨지는 융화력과 흡인력이 뛰어났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강의는 정곡을 찌르는 화법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52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체육관에서 한 강의는 9000명의 학생이 몰려 옆 강당에도 스피커를 설치했는데 20년후까지 그 건물의 최다 청중기록이었다. ‘성행동의 정상과 비정상 개념’ ‘성적 반응의 생리적 심리적 요소’ 등이 강의 주제였다.

그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나 인터뷰 대상자들의 증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능력이 있어서 누구든지 대화를 시작하면 모든 것을 털어놓고야 말았다고. 그래서 킨지연구소 사람들은 킨지가 직접 인터뷰한 50년전 자료가 오늘날의 어떤 조사보다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한다.

실증적 과학을 중시한 킨지는 성에 관해 엄격히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조사에서 드러난 ‘인간 성행위의 극단적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당시로서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연과 사회에 반하는 범죄행위로 여겨졌던 자위 오럴섹스 동성애 등을 성교와 같은 종류의 ‘성행위’로 다루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은 과학의 영역을 넘지만 적어도 그것들은 생물학적 근거를 갖고 있으므로 정상 비정상으로 예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학문을 빙자한 음탕한 포르노’‘색에 대한 호기심에 미친 사람’ 등 온갖 비난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코페르니쿠스나 다윈처럼 새로운 과학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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