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재벌체제는 무조건 惡?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9시 47분


“153㎝의 단신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주니어용 골프클럽을 써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김미현선수는 ‘당연히’ 성인용 클럽을 쥐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외국선수들을 이길 수 있었다.”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재벌 옹호론자’로 비난받은 송병락(宋丙洛)서울대 부총장은 ‘슈퍼땅콩’ 김미현 선수의 사례를 들어가며 한국적 기업구조를 찾아야 할 당위성을 역설했다. 미국적 환경에 적합한 기업모델이 우리상황에 무조건 맞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우려였다.

전위원장 등 정부 관료들은 2년여 동안 재벌체제의 해악(害惡)을 부각시켜 왔다. 부당내부거래, 상호지급보증(출자), 일사불란한 총수 친정체제 등 한국 기업집단의 문제점들이 과다차입 경영을 부추겨 IMF구제금융에 이르게 했다는 지적에는 대다수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한국 재벌체제의 특징 중 상당부분은 자본과 기술이 척박한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 됐다고 지적하는 사람 역시 의외로 많다. 전위원장이 거론한 ‘선단경영’도 무조건 탓할 것이 아니라는 실증적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해외 학자들도 “뒤늦게 출발한 한국기업이 자본 노동시장이 완숙한 선진국과 동일한 기업구조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곤 한다.

문제는 재벌체제가 가진 나름대로의 효율성을 활용하자는 주장까지 무조건 ‘친재벌 논리’로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다. 재벌오너의 편법상속과 탈세 등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오너의 부도덕성과 한국경제를 40년간 지탱해온 재벌체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현재도 30대 재벌이 우리 경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들이 지향해야 할 기업운영체제가 정부관리에 의해 일률적으로 강요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래정<정보산업부>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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