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 전투기'는 말한다

  • 입력 1999년 10월 26일 18시 36분


지난달 경북문경에서 발생한 공군 F5F전투기 추락사고는 ‘물 섞인 연료’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원시적 인재(人災)를 보탠 셈이다. 이 사고로 부조종사가 사망하고 50억원대의 전투기가 고철로 변했다. 이번 사고의 인명과 국방재산 피해도 작은 문제가 아니지만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데 더욱 큰 문제가 있다. 그날 같은 연료를 공급받은 다른 전투기 7대는 사고직후 이륙이 중단돼 사고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냥 이륙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하다.

공군당국이 발표한 사고원인을 살펴보면 이번 전투기 추락사고는 필연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전투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안전체크 절차가 무시됐다. 저장탱크→급유차→전투기로 연료를 이동시키는 동안 물과 이물질을 점검하는 두차례의 샘플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과기가 고장나 두차례의 여과과정도 생략됐다고 한다. 매일 한차례씩 하게 돼있는 연료저장탱크의 드레인(물빼기)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무사하기를 바랄수 있는가.

공군은 저장탱크 밑바닥에 생긴 폭 2㎜, 길이 2㎝ 가량의 균열 두개가 지하수의 유입통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꺼운 철판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만든 탱크에 이런 균열이 생겼다는 자체를 민간 전문가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공군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전투기 사고는 군기강 해이, 직무유기, 노후시설이 함께 빚은 총체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뒤늦은 상부보고 등 의혹사항들은 추가로 반드시 규명하고 지휘감독책임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아랫사람만 문책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민간항공사들도 ‘물 전투기’ 사고를 ‘먼 산의 불’로만 봐서는 안될 것이다. 수백명을 태우는 여객기에 바늘 구멍만한 허점도 생기지 않도록 더욱 경각심을 갖고 이중삼중의 철저한 점검을 일상화 해야한다. 이번 사고는 관장용 물비누 대신 양잿물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바람에 몇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최근 의료사고와도 본질이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전문분야로 꼽히는 곳곳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물 전투기’ 사고의 의미는 결코 군대에 국한된 문제일 수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사회기강의 총체적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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