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根安경감’에게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그저께(21일)는 경찰로서 매우 착잡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이날은 경찰창립 54주년(경찰의 날)을 기념하는 ‘축하의 날’이었다. 많은 유공(有功) 경찰관들이 기념식에서 훈장과 포장 등 자랑스러운 표창을 받았다. 같은 시각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는 전현직 경찰관 6명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이른바 납북어부 고문사건의 가해 경찰관들이다. 재판부는 이들 중 3명에게 징역 1∼2년의 실형을 선고함과 동시에 법정구속하고 다른 3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경찰의 날이 ‘치욕의 날’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재판부가 이 판결에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성을 말살하는 고문은 용서할 수 없다는 점을 재천명한 것이다. 재판부는 70년대 중반 납북됐다가 돌아온 김모씨가 경기도경(현 경기경찰청) 공안분실로 불법연행돼 3개월간 감금상태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자신이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한 점을 인정했다. 그는 귀환 10여년 만인 85년 마을 사람들에게 “평양에도 높은 빌딩이 있더라”고 ‘진실’을 말했다가 이런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그러나 결국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후 11년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법원이 고문경찰관들을 처벌해달라는 김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고문혐의에 대한 진실규명의 기회를 맞았다. 이번 판결로 그는 고문 14년 만에 짓밟힌 인권을 되찾은 셈이다. 이번 판결은 과거 대공(對共) 수사기관의 관행적 가혹행위에 대해 엄격한 징벌을 가함으로써 인권보호에 한걸음 다가서게 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아쉬운 대목이 남아 있다. 유죄판결을 받은 전현직 경찰관 6명이 섰던 법정에 꼭 있었어야 할 사람이 빠진 점이다. 바로 대공수사 분야에서 ‘고문기술자’로 불렸던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이다. 그는 88년 12월 지명수배된 이래 지금까지 생사의 흔적조차 없다. 검경에 전담 추적수사반이 편성돼 있다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그의 행방과 관련해서는 자살설 제거설 해외밀항설 성형수술설 비호은둔설 등 소문만 무성하다. 그가 어디에 있든 법의 심판대에 서기 전에는 이 사건은 미완성일 뿐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제발로 모습을 드러내 응분의 죄과를 받는 게 최선이다. 공소시효가 연장된 2013년까지 은둔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그의 나이 70대 중반이 된다. 그대로 세상에서 잊혀질 경우 그 자신도 회한을 남기게 될지 모른다. 그 전에 스스로 용서를 비는 것만이 대공수사에서 나름대로 세운 일부 공적이나마 참작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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