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없는 문화축제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문화행사들이 풍성하게 마련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이달 한달 동안 열리는 대형 문화행사는 600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시나 군의 이름을 내건 지역문화축제다. 규모가 단연 크고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탓이다. 문화계에서는 ‘문화의 서울집중’ 현상에 우려를 표시해 왔다. 하지만 문화축제에 관한 한 그런 걱정은 더 이상 필요없을 듯 하다.

▽지역문화축제는 90년대초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된 이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로 관 주도에 의해서였다. 긴 세월에 걸쳐 자생적으로 형성된 외국의 지역문화축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같은 ‘문화의 속성재배’에 따른 부작용이 표면화되는 단계다. 문화를 잘 모르는 공무원들과 행사를 기획한 전문가집단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축제가 끝난 뒤 많은 액수의 적자가 발생해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긴 사례도 적지 않다.

▽지자체들은 축제를 문화행사보다는 지역을 널리 홍보하고 자체 수입도 늘리는 ‘관광상품’으로 끌고 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정작 겉으로 내걸었던 문화행사가 뒷전으로 밀리고 그 대신 상품이나 음식판매, 놀이 기능이 전면으로 나서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역축제들이 저마다의 특징과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모두 엇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축제가 ‘먹자판’ ‘놀자판’으로 꾸며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화축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사이비 문화축제가 ‘문화의 달’ 행사로 버젓이 ‘화장’을 하고 나서는 것은 더욱 용인할 수 없다. 이런 축제들이 없더라도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놀고 마시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적어도 문화의 달만은 명실상부한 문화축제로 가득찼으면 하는 마음이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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