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군부 비중 높은 북한체제

  • 입력 1999년 10월 17일 18시 49분


국가정보원이 15일 국회 국정감사에 내놓은 북한의 권력서열을 보면 서열 30위 이내의 꼭 절반을 군부인물이 차지하고 있다. 서열 1위인 김정일(金正日)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 자신부터 군 최고사령관으로 군인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리고 3위가 군 총정치국장 조명록(趙明祿), 5위 호위사령관 이을설(李乙雪), 10위 사회안전상 백학림(白鶴林), 11위 군총참모장 김영춘(金英春) 등이 군부인물이다. 이들은 대부분 1930∼40년대 만주와 소련에서 활동했다는 이른바 김일성(金日成)유격대의 전령병 출신이다. 김총비서가 어렸을 적 그를 등에 업고 다녔다는 북한판 가신(家臣)들이다. 이런 군부인물들이 높은 권좌에 앉아 체제의 앞날을 좌우하고 있다니 북한이 경제개혁과 국제사회 진출 같은 것들을 어떻게 해 나갈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다.

많은 국제언론과 전문가들이 북한을 ‘병영국가’라고 비판해 왔지만 실제 핵심권력을 이렇게 군부인물 다수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공산주의 체제라 해도 그 나름대로 개혁과 발전을 이룬 나라들은 당 정치국과 비서국이 군부보다 위에 서 왔다. 그래서 당의 문민(文民)집단이 군부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했다. 중국의 예가 대표적이다. 인민해방군이 국공(國共)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정부를 수립한 중국이야말로 군부의 발언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을 거쳐 오늘날 장쩌민(江澤民)당총서기와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이끄는 문민지도체제 아래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북한도 60년대 한창 경제개발에 치중할 때는 이념집단 성격인 당과 군 외에 테크노크라트들로 구성된 정무원의 역할을 상당히 존중한 적이 있었다. 김일성시대가 지금의 북한보다 나은점이 있었다면 그렇게 당군정(黨軍政)이 나눠져 각기 제 할 일을 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올해 초 관영언론의 공동사설 형식을 빌린 신년사에서도 ‘사회주의 사상강국, 군사강국’건설을 내세우면서 군을 우선시한다는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했다.

군정체제가 가지는 문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민의를 대변할 다양성의 힘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융통성 있는 대화와 타협, 실용주의보다도 단세포적 대결주의가 더 판치는 체제가 되기 쉽다. 한쪽에서는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죽는데도 식량을 사들이기보다 미사일 쏘는 데 더 돈을 쓰는 것도 이런 군우위의 체제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북한은 경제 살리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전문가 우위 체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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