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40)

  • 입력 1999년 10월 8일 17시 58분


이잉 그려, 쪼깨 기다리쇼 잉.

그네가 종이쪽지와 볼펜을 들고 마루로 나왔고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요… 정희씨 전화번호를 알고 계시지요?

잉? 머라고 그렸소?

한 선생 동생되는 이 말입니다.

아아 난 또 머라고. 그니 이름이 한정희제… 아매 어딘가 있을 거여. 찾아 봐야 쓰것구만.

방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있다가 순천댁은 가계부로 보이는 두꺼운 노트를 들고 나왔다. 그네는 노트의 뒷편에 적힌 여러 개의 번호 중에서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어 보여 주었다.

이놈이 동상 되는 이 집이고 그 아래 놈이 병원이랍니다. 여그 오기 메칠 전에는 꼭꼭 전화를 하든디.

뭐 적을 것 좀 없습니까?

볼펜은 있고오, 그 공책 한구텡이 찢어불제.

나는 전화 번호를 적어서 그야말로 노트의 귀퉁이를 찢어냈다. 순천댁이 말했다.

일루 들어오소. 생각난 김에 시방 얼릉 전화 해보랑게.

아뇨, 나중에 하지요. 읍내 나가서 사올 물건이나 적어 주세요.

잉 그라지라. 우리 망냉이가 물건 하러 나가는디 광주꺼지 나간께 저녁답에사 올것이오.

그네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적고 하는 바람에 십 분 넘게 걸렸다.

헌디 무얼 타고 나갈라오. 여그는 차도 안댕기는디.

다릿목까지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면 되겠지요. 올 때는 짐두 있구 하니까 택시를 탈거구요.

핑 댕게오소. 동상 분헌티 아그들 덱고 한번 내레오라고 허시오. 우리도 은결이 보고잡어 그러요. 나가 받아내서 그란지 볼수록 정이 가더라고.

나는 아랫집에서 나와 과수원 사잇길을 따라 내려갔다. 토담 찻집은 한적해 보였다. 주말에만 좀 붐비고 무싯날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 듯 했다. 오전인데도 벌써 갈뫼 가든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들려오고 있었다. 식당이 서너군데 밖에 안되었지만 요란한 간판들 때문에 갈뫼는 도회지가 다 된 꼴이었다.

순천댁의 안방에 들어가 당장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참은 것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아직 생각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들이 곁에서 사연을 들을 게 마땅치 않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올 은결이의 목소리를 생각하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애의 나이는 내 투옥 기간과 같은 열여덟 살이다. 그것이 밖에서 학교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생일을 맞이하던 일들이 감옥의 나에게 알려졌더라면 견디기가 훨씬 수월했을까. 거기서 만났던 선배들의 경우에는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명암이 있었다. 몇 년 단위로 가족을 통하여 들어온 아이들의 사진에서 보면 사람은 대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마디를 이루면서 성장한다. 친 혈육끼리는 어떨지 모르지만 곁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마디는 일종의 상실로 보이기만 한다. 아버지를 빼앗긴 어린 아이의 모습은 어쩐지 애처롭겠지만 그건 당사자들 생각이고 다른 이가 보면 아버지인 동료 자신의 옛날 행복했던 모습처럼 보이기만 한다. 그는 저 사진 뒤의 어느 나무 밑 그늘이나 사진을 찍는 이쪽 화면 앞에 숨어 있을 것만 같다. 그는 사진 속의 아이를 통하여 지난 세상 가운데 정지되어 있었다.

<글: 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