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천년을 기록한 예술가의 눈 7]

  • 입력 1999년 10월 7일 18시 41분


H G 웰스는 공상과학소설 ‘타임머신’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쓴 소설 중 시간의 조작을 다룬 다른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새로운 가속기’라는 제목의 이 소설에는 지번 교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모든 것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피곤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해 신경전달체계의 속도를 높임으로써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약을 개발한다. 그리고 시험삼아 자신이 직접 그 약을 먹는다.

약을 먹은 다음 그가 본 것은 바람에 펄럭이다가 공중에서 멈춰버린 커튼, 바람에 날아가다가 역시 공중에서 멈춰버린 흙먼지, 동작을 하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사람들의 모습 등이었다. 지번 교수는 이 광경을 보며 “이것은 시각에 대한 이론을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옮겨놓고 있다”고 소리친다. 사실 웰스가 이 소설을 쓰고 있을 무렵, 시각에 대한 이론은 이미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1872년경 스탠퍼드대의 설립자인 리랜드 스탠퍼드는 말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이드위어드 뮈브리지라는 사람을 고용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말이 달릴 때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말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퍼드의 소유지에서 작업을 시작한 뮈브리지는 스프링을 단 셔터를 카메라에 달아 말이 지나가는 순간에 사진이 찍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찍은 사진은 너무 흐릿했다. 마침내 1878년에 그는 전자식 셔터를 단 카메라 12대를 이용해 일련의 사진을 찍은 결과 말이 달릴 때 네 다리가 모두 땅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에티엔 쥘르 마레이라는 생리학자가 뮈브리지와 비슷한 카메라를 발명해 인간의 걷는 동작을 연구하고 있었다.

현미경과 망원경이 공간적으로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면 사진은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정지시킴으로써 시간적으로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속도를 묘사하는 것을 새로운 임무로 삼았다.

뮈브리지와 마레이의 연속사진에 뒤이어 등장한 것은 영화였다. 그리고 다시 그 뒤를 이어 만화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사진보관소 등이 등장했다.

한편 뮈브리지와 마레이의 또 다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의 해롤드 에저튼은 1920년대 말에 플래시 튜브를 이용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우유의 왕관현상이라고 불리는 사진을 처음 찍은 것도 이 기술을 이용해서였다. 에저튼은 이밖에 미국의 원자폭탄 폭발 광경, 풍선을 뚫고 지나가는 총알, 라켓에 맞아 튀어나가는 테니스 공 등을 사진으로 찍었다.

현대의 전자장비를 이용하면 3억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일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00만분의 1나노초(1나노초=10억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일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돼 있다. 학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고체가 녹을 때 원자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떤 현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면 큰 힘이 생긴다. 자동차의 에어백이 고안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10분의 1초 단위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제임스 글리크(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가)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4/gle

ic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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