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핫라인'없는 與野

  • 입력 1999년 9월 28일 18시 49분


동티모르 다국적군 파견문제를 논의한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김덕룡(金德龍)의원은 파병 반대입장을 분명히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파병을 결정하면서 국민과 야당을 상대로 한마디 상의라도 했느냐. 그러니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이란 얘길 듣는 것이다.”

두 의원은 사전 상의의 대상으로 ‘국민’과 ‘야당’을 거론했지만 기자에게는 ‘야당’쪽에 더 무게가 실려있는 것으로 들렸다. 아무튼 정부로부터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야당을 자극했고 급기야 국회의사당에서 ‘육탄저지’라는 볼썽사나운 모양으로 치닫게 됐다.

이같은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문제 중 하나가 여야 간의 ‘핫라인’이다. 과거 군사정권때도 여야 간에는 ‘막후대화’라는 게 있었다. 막후대화는 흔히 ‘밀실야합’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여야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만일 김대중대통령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파병에 관해 전화 한마디라도 했다면 국회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겠느냐는 얘기가 국회 안팎에서 무성하다.

파병의 찬반론에는 나름대로 정당성과 근거가 있다. 파병 여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선택이 잘못됐다면 후일 정부 여당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국내 정치문제도 아닌 대외적 사안을 놓고 과연 육탄으로까지 맞설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야당도 엄연히 국민대표성을 지닌 집단이라는 생각을 소홀히 한 김대통령의 책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윤영찬(정치부)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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