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낭비성 새 천년 행사 정비를

  • 입력 1999년 9월 27일 18시 44분


새 천년의 첫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태풍으로 연기됐던 정부차원의 D―100일 행사도 29일부터 열려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풍선을 지구촌을 향해 날리는 등 크고 작은 새 천년 맞이 행사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새 천년과 함께 맞는 새 세기의 도래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인 만큼 개인이나 기관이 뭔가 뜻있는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새 천년행사를 기획하고 그에 소요되는 예산이 1300억원이 넘는다는 보도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각 지자체는 소요예산의 15%만 자체적으로 확보해 놓고 나머지는 국고보조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의미 있는 행사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민간차원에서 해야 할 행사가 대부분이고 천년 대종 제작과 같은 중복행사들이 너무 많다. 이를 위해 10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새 천년은 1000년에 한번밖에 없는 기회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기념해야 되겠지만 흥청망청식 이벤트나 겉보기만 그럴듯 한 한건 위주의 행사여서는 안된다. 44개나 되는 광역단체의 사업은 단체마다 1개 정도로 엄선해야 하고 기초단체는 분수에 맞는 행사기획을 다시 짜야 한다. 이와 함께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추진하더라도 중앙정부 차원의 평가를 통해 중복되고 예산낭비가 분명한 행사는 지금이라도 중지돼야 한다.

차제에 새 천년 기념사업 관계자들은 기념물을 세우든 새로운 형태의 행사를 시작하든 후손들이 두고두고 감사할 만한 일을 추진하도록 당부하고 싶다. 19세기말 에펠탑을 세워 세계인을 사로잡은 선조들에게 금세기 프랑스인들이 감사하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0세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건립함으로써 21세기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분명한 밀레니엄 돔을 후손에게 선사하는 영국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천년의 문’ 건립 등 대규모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에펠탑이나 밀레니엄 돔과 같은 세계인의 관심을 끌 내용이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새 천년 사업이 상업주의로 빠져 본래의 정체성(正體性)을 잃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연극문화의 거리였던 동숭동 대학로가 이른바 ‘먹자 거리’로 변하자 본래의 취지를 잃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새 천년을 맞으며 기발한 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어떤 모습의 문명을 창조해 갈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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