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안정기금 투입 첫날]시장동요 일단 진정

  • 입력 1999년 9월 27일 18시 44분


채권안정기금의 본격 매수 첫날, 시장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27일 오후부터 매수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하자 시장에 나온 채권물량이 대부분 소화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던 장기금리 급등세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아직은 마음을 놓을 단계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대우사태에 따른 불안심리가 남아있는데다 과연 이 기금이 투신권의 매물 부담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

채권딜러들은 이 기금의 등장으로 자금시장의 거래 심리가 되살아나고 금리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활기 되찾은 자금시장

금융당국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번째 개장일인 27일의 시장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근 몇차례 시행된 금융안정대책의 예에서 보듯 이번 조치의 효과가 초기에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자칫 시장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 대책은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 표면적으로는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이 사라진 듯 보였다.

한 채권딜러는 “손님이 없어 상점마다 파리만 날리는 맥빠진 시장에 인심좋은 전주(錢主)가 뭉칫돈을 싸들고 나타난 형국”이라며 “자금시장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장단기 금리가 일제히 큰폭으로 떨어진 것은 신규자금이 유입된 때문이라기보다는 거대 매수세력의 출현에 따른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설명. 실제로 채권안정기금의 매입 규모는 600억원대에 불과했다.

채권시장안정기금은 이날 A+등급인 ㈜SK 발행의 잔존만기 2년물 100억원어치를 연 9.95%, BBB- 등급인 ㈜한화 발행의 잔존만기 3년물 100억원어치를 11.9%에 각각 매입했다.

기금이 회사채 기준금리가 되는 우량물을 9.95%에서 매입한 것은 향후 회사채 금리를 연 10% 이내에서 유지하는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금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 모 증권사 관계자는 “기금 운용 담당자들은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각 은행의 베테랑들이어서 앞으로 전반적인 채권거래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자릿수 금리 가능할까

금융당국은 당초 채권시장안정기금을 출범시키면서 ‘채권수요 기반 확충→채권매도물량 흡수→금리 하향안정→수익증권 환매요구 감소→금융시장 안정’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을 기대했다.

이날 시장상황만 놓고보면 금융당국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일부 채권딜러들은 단기적으로는 장기금리 한자릿수도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 한국채권연구원의 김경록(金敬錄)연구위원은 “채권기금의 매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이달말이나 다음달초에는 3년만기 회사채의 경우 연 9% 후반대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의 시장금리에는 대우사태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인해 일정부분 ‘거품’이 깔려 있다는 점도 금리의 추가하락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

그러나 현재의 경제여건과 대우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현상 등을 감안할 때 매수세력 확대를 통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경제여건을 보아도 한자릿수 금리를 이어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분석. 2·4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9.8%에 달하고 하반기(7∼12월) 물가상승률이 2∼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요진작책 하나만으로 저금리 기조를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연구위원은 “투신권 구조조정안이 10월 중순경까지 안나오면 시장불안 심리가 되살아날 소지가 크다”며 “채권안정기금 출연액 20조원중 절반 정도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분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박현진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