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근로기준법등 상습위반 업주

  • 입력 1999년 9월 22일 17시 43분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임금 고용관계 안전 등을 보장하는 양대 법으로 주로 사용자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용자들은 이 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왜 그럴까.

▼근로기준법 운용 실태

7월초 지방의 한 백화점 경영주가 구속됐다. 재산을 감춰놓고 직원 224명에게 총 7억6600여만원 가량의 임금을 주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과 검사가 이 사람이 사전에 로비를 펼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당직 판사까지 고려해 영장을 청구했다는 사실. 이 사람이 “아는 판검사가 수두룩하다”며 기세등등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어렵게 부도덕한 사용자를 구속하는데 성공한 경우. 그러나 엄연히 법을 위반하고 우롱하는 악덕 사용자라도 구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올해 들어 6월말 현재 1만2858명이 사법처리됐다.

대개 임금체불이 문제가 됐고 부당해고 때문에 입건된 경우는 166건에 불과했다. 이중 구속된 사용자는 8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불구속 처리됐다. 90년대 초와 중반에는 한해 30∼50명 가량 구속됐는데 97년에는 8명, 98년에는 16명에 그쳤다.

근로기준법은 상습적인 임금체불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징역형이 내려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불구속 상태에서 벌금형이 내려지거나 기소유예 처분된다.

또 구속되더라도 병보석이나 금보석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의 백화점 경영주도 한달만에 금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용자를 파렴치범이 아닌 ‘경제사범’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97년 검찰에서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 행정처리로 해결하라”는 지침을 내린 이후 구속자수가 더욱 줄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일부 부도덕한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 법을 우롱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연줄을 동원해 법망을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운용 실태

지난해 10월 부산의 한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27명의 인부가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법원이 사고 책임을 물어 현장소장 B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건설업체 두 곳에 각각 3000만원과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자 일각에서는 “4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고에 대한 책임치고는 너무 가벼운 형벌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같은해 8월 경기 포천의 도로공사 현장에서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나 하도급업체 소장과 법인은 각각 200만원의 벌금을 무는 것으로 책임을 면했다.

보통 1,2명이 사망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안전책임자는 그저 150만∼500만원 정도의 벌금만 물면 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안전사고의 책임을 물어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부산 냉동창고 화재사건이 처음인데 그나마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책은 없나

법 운용은 사법부의 판단에 속하는 문제다. 사용자를 구속했을 경우 정상적인 회사운영이 어려워져 오히려 근로자에게 피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산하 금속산업연맹 김기덕(金起德)법률국장은 “일방적인 사용자 봐주기”라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해 구속노동자는 219명이었고 올해에는 100여명의 노동자가 구속됐으며 이중 구속취소 형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난 사람을 제외하고 현재 22명이 수감돼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동관계 전문가들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사용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옥석(玉石)을 명확히 가려 법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지금보다 벌칙규정 등을 훨씬 강화해 예방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회사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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