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創黨 효과’ 살리는 법

  • 입력 1999년 9월 1일 18시 23분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일까. 여야 모두가 새단장에 바쁘다. 국민회의가 국민정당 창당을 결의한 날, 한나라당은 제2의 창당을 선언했다. 여야 모두가 지금의 정당체제로는 총선 승리가 난망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니 현재의 정당체제를 가지고 마치 나라의 견인차라도 되는 양 국민을 눈가림하기도 이제는 지치고 힘겹다는 고백은 아닐까. 더이상 이 나라 정당정치의 헛손질을 믿어주는 국민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위기감을 느끼는 정치권의 자기 생존전략일 수도 있다.

◆근본부터 달라져야◆

어쨌거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지금의 정당으로 21세기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신당을 창당할 경우 신당창당 작업은 기성정당의 그것과는 근본부터가 달라야 한다. 창당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야 하고 정당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옳다. 그런 점에서 진지하고 진실된 자세를 견지하는 일은 신당창당 작업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기성정당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불신의 벽을 넘으려면 창당과정 자체가 신뢰에 찬 것이 되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창당과정의 언행일치가 필수적 과제다.

예컨대 신당창당이 기존정당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어째서 현재의 정당을 해체해야 하는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국민회의는 무엇이 문제였으며 한나라당은 어째서 부적절한지를 스스로 진단하고 천명하라는 말이다. 그럴 때 창당하고자 하는 정당의 목표와 좌표가 어떤것이 되어야 하는지도 밝혀지며 신당창당이 또 다른 양식의 정치적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일반의 의구심을 풀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기성정당의 고해성사만큼 실추된 정당정치의 신뢰와 존경심을 회복하는 길은 따로 없다.

지나친 명분주의도 경계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신당이 창당되기만 하면 전국정당화가 가능해질 것 같이 암시하는 일은 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정당에 대한 불신만을 키우게 된다. 우리에게 지역감정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있다. 타지역에서 국회의원 몇몇 당선된 것을 가지고 정당의 전국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실제 성취되는 것은 정당에 대한 불신의 증폭뿐일 것이다. 중선거구제나 소선거구제만이 진선진미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자세도 구태의 반복이다. 중선거구제를 택하는 경우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으며 소선거구제를 택하는 때에는 어떤 실익과 손실이 있는지를 진솔하게 밝히면서 자신의 신당은 어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어느 쪽을 택하게 됐는지를 말하는 것이 정도다.

◆실현과 성과가 우선◆

진짜 신당은 새로 생겨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시각의 정당을 탄생시킬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여야는 지금 사람이 바뀌어야 신당이라는 생각에서 각계로부터 신인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전문가 집단이 신당의 주류를 형성해야 한다거나 재야인사가 개혁정당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식의 논의에는 신당이 여전히 엘리트 정당의 범주를 맴돌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이 시사되고 있을 뿐이다. 전혀 새로운 정당, 21세기를 겨냥하는 정당은 소수의 덕망가가 주도하는 정당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견인해 나가는 평당원 중심의 정당이어야 한다. 진짜 새사람은 당원중심의 사고 속에서나 발견된다는 의미다.

신당이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서도 논쟁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점에서도 신당은 다른 차원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 정강정책의 휴전시대에 진보나 보수로 나누려는 일 자체가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현대정당은 이미 이데올로기 논쟁의 차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어느 정당이든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중도통합 정당이 되기를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오로지 남겨진 진실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문제해결에 나서고자 하느냐 뿐이다. 원칙보다 대안이, 대안의 개발보다는 실현과 성과의 도출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신당이 도달해야 할 새로운 가치의 세계다. 기왕에 정당 혁파의 문을 열고자 한다면 진짜 신당을 만들어 역사의 물꼬를 새롭게 트는 일에 나서기 바란다.

박재창<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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