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화걸기 불안하다'

  • 입력 1999년 8월 23일 18시 50분


전화통화중 잡음이 들리거나 소리가 작아지기라도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누가 엿듣고 있구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은 중요한 얘기를 하려면 반드시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전화를 믿지 못해 직접 먼길을 찾아가 업무를 보는 기업인도 있다. 전문업체에 맡겨 사무실을 샅샅이 점검하고 도청방지시설을 설치하느라 법석을 떨기도 한다.휴대전화도 많은 사람이 불안해 한다.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인가. 작년 정기국회때 수사기관에 의한 불법감청이 많다는 사실이 폭로돼 큰 논란이 빚어졌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이후 도청공포는 더욱 확산된 것 같다. 간첩이나 마약사범 등 중대한 범죄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전화감청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아무리 사생활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가와 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자유까지 보장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영장에 의한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합법성이 인정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상반기 국가정보원에 의한 합법적 감청이 463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6%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작년 정기국회때 일부 드러났듯이 영장에 의하지 않는 불법감청이다. 상시 감청대상인원이 총 1만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으나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지 않은 지도층 인사나 기업인들간에 ‘도청노이로제’가 널리 확산돼 있다는 사실이다. 불법감청은 수사기관이 하든, 심부름센터 등 일반인이 하든 중대한 인권침해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불법감청자에게는 징역 7년까지 처하도록 한 무거운 처벌조항은 바로 그런 취지에서다. 나아가 불법감청은 우리 사회에 불신풍조를 조장하며 경제적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

현정부는 각종 인권침해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인권정부’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권문제는 ‘과거 가장 큰 피해자’였던 대통령 한사람의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 뜻이 도청의 유혹을 끊임없이 느끼는 수사기관, 나아가 민간에까지 실질적으로 파급되지 않는다면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야는 지난해 48시간까지 영장없이 가능한 ‘긴급감청’을 없애거나 24시간으로 줄이고 너무 폭넓은 감청대상범죄를 축소하는 내용의 법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개정안은 지금 온데간데 없다. 법원도 당시 감청영장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얼마나 시정됐는지 의문이다. 통제가 되지않는 영장제도는 있으나마나다. 민간에 횡행하는 도청을 막을 대책마련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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