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右傾化로 가다] "과거청산으로 정체성 찾자"

입력 1999-08-11 19:28수정 2009-09-2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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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두드러진 변화를 주변국가들은 ‘우경화’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들은 전후(戰後)청산을 통해 일본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일본 지식인사회의 ‘자학사관(自虐史觀)’ ‘반자학사관(反自虐史觀)’논쟁이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논쟁은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해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을 ‘자학사관의 산물’로 몰아붙이는 지식인들이 급속히 고개를 들면서 비롯됐다.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도쿄대 교수 등은 96년 모든 중학교과서가 군위안부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불만을 품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구성했다. 이 모임은 교과서에서 군위안부 기술을 빼라고 문부성에 요구하고 있다.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메이지(明治)학원대 교수는 95년 “먼저 일본 희생자를 추도하지 않고 다른 나라 희생자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역사주체논쟁’으로 명명된 이 논쟁은 97년까지 계속됐다.

집권 자민당의 전(前)정조회장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의원은 “국가의 주권, 민족의 독립을 유린한 ‘침략’행위는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사죄외교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파워엘리트의 시각을 시사한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일부 정치가의 망언도 일본인의 속마음을 내비친다. ‘일본 정치가 망언 사전’(98년, 고게쓰샤·紅月社)에 따르면 78∼97년까지 20년간 각료와 국회의원 54명이 143차례의 망언을 했다. 침략전쟁을 부인한 것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전후청산의 기치는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총리가 내걸었다. 79년 정치 경제 사회부문 등 9개의 연구팀을 만들어 일본이 패전이후 입고 있는 ‘옷’을 고치려 했다. 특히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는 평화문제연구회 야스쿠니(靖國)문제간담회 등을 만들어 일본의 틀을 다시 짜려 했다. 그러나 이를 완결하지는 못했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지금도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주어진 것이다. 일부 국민은 일본의 부흥과 체제유지를 위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미뤄진 문제들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착착 해결하고 있다. 오부치총리는 메이지유신과 패전직후의 개혁에 이어 지금은 ‘제3의 개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확장주의는 92년 국제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이 물꼬를 텄다. 이 법은 야당의 격렬한 반대 끝에 통과됐다. 일본자위대는 전후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나 캄보디아 땅을 밟았다.

일본 우경화의 지향점은 헌법개정이다. 군대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한 제9조가 표적이다. 최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자유당 당수는 자신이 만든 개헌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은 집단자위권을 가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집단자위권은 자연권이므로 어떤 법도 금할 수 없다. 주변국가의 우려는 헌법에 평화주의 이념을 명시하면 지울 수 있다”고 말한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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