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윤철/경실련을 보는안타까움

  • 입력 1999년 7월 9일 19시 30분


8일 저녁 서울 중구 경실련 회의실에서는 집행부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조직개혁 문제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밖에서 고성이 오가는 회의를 지켜보던 젊은 직원들의 표정은 밀랍처럼 굳어 있었다. 박봉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에 젊음을 바친다는 전성기 때의 자부심을 이들의 표정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직원 중 누군가가 경실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 있던 편지 하나를 복사해 회의실 문 밖에 얹어 놓아 눈길을 끌었다.

메일의 작성자는 자신을 ‘경실련에서 몇년간 일했던 실무자’라고 소개했다.

90년대 초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경실련에 소명감을 갖고 뛰어들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각계 전문가들이 쏟아놓는 정책과제들은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론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조직으로 변화하는 경실련을 지켜봐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게다가 권력의 향배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웃분들의 모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회고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류에 서지않으면, 일류대 출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왜곡된 선민의식을 갖고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남은 동료들에게 던지면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조직 갈등으로 내홍(內訌)을 겪고 있는 경실련을 바라보는 많은 시민들의 심정이 바로 이 메일의 작성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시민운동의 맏형’격으로 10일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경실련이 하루속히 시민들의 성원을 받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박윤철<사회부> 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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