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안도현/언어의 「햇볕정책」

  • 입력 1999년 7월 9일 19시 30분


햇볕정책,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놓고 말들이 많다.

대체로 분단이 가져다 준 여러가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햇볕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북한이 상종할 수 없는 ‘주적(主敵)’일 뿐이다. 그들은 햇볕보다 그늘을 사랑하니까.

그들이 햇볕정책이라는 표현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잦아지니까 이제 한편에서는 포용정책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한다. 뭔가 대범해 보이는 북한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는 포용정책이 낫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적 언어인 햇볕은 또 한번 시련에 맞닥뜨리게 된다. 분단 이데올로기는 언어마저 빼앗아 간다.

경수로사업, 금강산 관광, 고위급 회담, 비료와 옥수수 보내기 등 최근 들어 북한과의 교류가 눈에 띄게 잦아지고 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이산가족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햇볕정책은 더러 할퀴어 상처 입기도 했지만 아직 꿋꿋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북한에 줄 햇볕만 있지 북한으로부터 받을 만한 햇볕은 없나? 나는 느닷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눈치 빠른 이들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햇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만을 염두에 둔 북한관은 오히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북한이 햇볕정책을 두고 흡수통일의 저의가 깔려 있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 있는 햇볕을 우리가 먼저 얻어다 써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돈도 들지 않을 뿐더러 자존심 상하는 염치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자극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문화 생활을 훨씬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 그 북한의 햇볕이란? 바로 북한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빌려와 쓰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북한 말 중에는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경한 신조어들이 많다. 60년대 중반 이후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만들어진 북한의 ‘문화어’는 이데올로기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과 순우리말로 곱게 다듬어진 말이 혼합되어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받아들여 사용할 만한 좋은 말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 끌신(슬리퍼) 물맞이칸(샤워실)과 같은 말은 얼마나 적합한 우리말식 표현인가.

분단 이후 우리는 ‘인민’ ‘동무’ ‘붉은 깃발’과 같은 말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려야 했으며, 한 때는 ‘원양어업’ 보다 북한에서 쓰는 ‘먼바다 고기잡이’가 낫다고 가르친 교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까지 가는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절반의 언어를 차지하고 살았다.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랜드로바’를 신고 대형 할인 ‘마트’로 가 ‘쇼핑’을 하고 주말에는 ‘위크엔드’를 입고 교외의 ‘가든’과 ‘모텔’을 이용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를 물어 보아야 할 때다. 이제는 언어 이질화의 결과를 두고 논란을 벌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북한말을 받아 써 보기를 제안한다.

그래야 나중에 북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이가 ‘닭알구이’가 먹고 싶다면 계란프라이를 후딱 부쳐다 줄 게 아닌가.

안도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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