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베스트]남녀사랑 최고 아이디어

  • 입력 1999년 6월 6일 20시 05분


서구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거의 전적으로 남녀간의 낭만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서 주체할 수 없는 정열을 느끼는 현상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인간들 사이에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고대에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총괄적인 의미의 ‘사랑’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적 사랑과 가장 가까웠던 것은 고대 그리스 남자들이 소년에 대해 품었던 동성애적 감정이었다. 물론 결혼한 부부의 사랑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문학작품만을 놓고 판단할 때 그리 사람들의 찬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묘사한 이상 국가에서 결혼은 우선 짝짓기를 해서 후손을 남기기 위한 일로 설명되고 있다. 반면 플라톤은 ‘심포지엄’에서 남자들끼리의 사랑에 대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낭만적인 말을 동원해가며 찬사를 퍼부었다. 남녀간의 혼외관계가 절망과 파괴적인 죽음만을 낳은 반면 동성애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히폴리투스’에서 여주인공 페드라는 남편의 사생아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거부당하고 자살을 택한다. 페드라는 결코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라 원하지도 않았던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인물로 묘사된다.

아서왕의 기사인 랜슬롯과 기니비어 왕비의 사랑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1469년에 토머스 말로리 경이 쓴 ‘아서의 죽음’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다른 중세의 연인들, 즉 엘로즈와 아벨라르,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느끼는 감정도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렬함을 띠고 있다.

14세기와 15세기경에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사랑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사랑의 감정은 거친 성욕의 표현이 아니라 세련되고 부드러워야 했다. 사람들은 숙녀에 대한 기사의 사랑이 중세부터 시작된 성모 마리아 숭배가 세속화된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근대에 들어 더욱 기세가 오른 낭만적 사랑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준 것은 플로베르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이었다. 그녀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낭만적 정열을 손에 쥐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녀의 열망은 거의 예외없이 실망으로 끝나버렸다.

낭만적인 사랑은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섬세하고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문명이 존재하는 한 낭만적인 사랑은 살아남을 것이다. 음식이 풍부한 곳에서만 미식가가 나올 수 있듯이 낭만적인 사랑도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낭만적인 사랑은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사람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믿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과 같다.

◇필자소개

조이스 캐롤 오츠〓미국의 소설가. 최근의 작품으로는 ‘마음의 수집가:새로운 괴기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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