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인사 진통의 속뜻

  • 입력 1999년 6월 6일 19시 25분


지난주 후반에 하려던 검사장급 이상 검찰간부 인사가 진통끝에 일요일인 6일에야 마무리됐다. 박순용(朴舜用) 신임 검찰총장의 사법시험 8회 동기 일부가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용퇴 요구’에 반발해 이를 조정하느라 늦어졌다고 한다. 국가기관의 고위직 인사문제를 둘러싸고 이렇게 잡음이 많았던 적도 드물 것이다. 법으로 철저히 신분이 보장돼 있는 검사들에게 총장동기라는 이유만으로 퇴진을 강요한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그들의 반발배경에는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깔려있다고 본다.

인사문제와 관련해 총장동기들이 ‘최후의 만찬’을 갖고 논란을 벌인 자체도 희한한 일이지만 예삿일로 볼 수도 없다. 인사권을 쥔 법무장관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풀이한다. 총장이 새로 임명됐을 경우 동기들에게 용퇴를 요구하는 것은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이는 총장의 지휘체계 확립을 돕고 후배들에게 승진의 길을 터주기 위한 ‘미덕’으로 통해 왔다. 동기들은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더라도 ‘청운의 꿈’을 일단 접는 것이 그동안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에는 왜 다른 때에 비해 진통이 심했는가. 그 해답은 김법무장관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독해법(讀解法)이다.

김장관은 ‘옷 로비’의혹사건에서 비록 부인의 일이기는 하나 도덕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오전에는 봉사활동, 오후에는 고급의상실 출입’이라는 김장관 부인의 처신은 남편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게 다수 국민의 정서다. 장관부인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결론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김장관은 2월의 검찰파동 당시 총장으로서 검찰내부와 국회에서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검찰의 중립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정치검사’로 낙인 찍혔던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정당성을 잃은 김장관에게 법무행정을 계속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은 본란에서 여러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검찰간부 인사는 김장관이 마주친 첫 중요 업무였다. 예상대로 그는 법무장관의 직무를 순조롭게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가달라는 장관의 인사방침을 전달받고 일부에서 터져나온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 하느냐’는 소리는 김장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관에게 도덕적 기반이 없으면 기본적 인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한 이번 일은 인사문제로만 좁혀서 볼 일이 아니다. 적지않은 일선 검사들이 김법무장관에게 갖는 거부감 또는 불신의 정서는 앞으로 그가 법무행정을 펴나가는 데 큰 부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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