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박준규議長의 「말」

  • 입력 1999년 4월 4일 19시 38분


말은 천(千)의 얼굴을 갖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쓰는 사람과 억양 상황 등에 따라 상대방에게 다르게 들릴 수 있다. 한마디 말이 원수를 만들기도 하고 천냥 빚을 갚는 위력을 갖기도 한다. 말속에 또다른 말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옛 선인들이 세치의 혀를 잘 놀리도록 경계해온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말은 쓰는 이의 품격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이 지난 2일 사진기자들에게 적절치 못한 말을 써 말썽이다. 박의장은 본회의 개최문제와 관련해 항의방문한 한나라당 총무단과의 면담과정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들에게 역정을 내며 ‘사진쟁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박의장은 사진기자들의 항의에 처음에는 “기억이 안난다”고 발뺌하다가 뒤늦게 실수를 자인했다. 사진기자들은 곧 공식항의문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박의장의 표현은 사진기자에 대한 평소 생각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아도 언행이 다소 가볍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의장이다. ‘∼쟁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고위공직자가 여러 사람 앞에서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더구나 여러 정권에 걸쳐 대우받고 경륜을 쌓아온 정치인이 이런 비하하는 말을 한 것은 아무래도 온당치 않다.

▽‘정치’를 거꾸로 읽으면 ‘치정’이 된다. 정치가 잘못되면 치정사건처럼 추문과 싸움 파탄이 기다린다. 그래서 정치의 ‘정(政)’자에는 바를 정(正)이 들어있다고 국어학자 이어령(李御寧)씨는 풀이한 바 있다. 바른 정치는 정치인의 바른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국민교육적 측면에서도 정치인의 말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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