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유권자도 혼탁선거 책임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1분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경기 시흥의 국회의원 보선에 출마한 어느 후보 진영의 핵심관계자는 30일 선거가 끝난 뒤 유권자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물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음이다. 이번 ‘3·30’ 재 보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의 얘기는 이어졌다.

“선거가 시작되니까 결혼식과 계모임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산악회나 동별로 조직된 향우회에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노골적으로 찬조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3만∼5만원씩을 봉투에 넣어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화가 하루에 1백통 넘게 걸려온 날도 있었다.”다른 후보 진영도 사정은 비슷했다.

“1백50표가 있다며 1표당 3만원씩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다” “축구공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조기축구회도 있었고 체육대회를 한다면서 전자오르간을 사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식당 음식값을 떠넘기는 전화가 걸려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등 유권자들의 빗나간 행태에 대한 선거운동 관계자들의 ‘증언’은 끝이 없다.20년 이상 선거현장을 지켜 본 한 정당관계자는 “아직 상당수 유권자들은 선거판을 ‘잔치판’으로 생각하고 후보자를 ‘봉’으로 본다”며 “언제까지 선거 때마다 ‘잔칫상’을 계속 마련해야 하느냐”고 말했다.선거 과열과 혼탁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오로지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권이 져야 한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은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치인들의 부도덕과 유권자들의 부화뇌동은 ‘선거판 오염’의 두 주범이다. 유권자들도 마냥 정치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공종식<정치부>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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